백사당 - 괴담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3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세 번째이자 대미를 장식한 작품입니다.

동시에 출간된 사관장이 햐쿠미(百巳) 가의 죽음의 의례인 장송백의례(葬送百儀礼)

당집 백사당(百蛇堂)에서 겪은 다쓰미 미노부라는 남자의 기이한 공포 경험담이라면,

백사당은 주인공 미쓰다 신조와 그의 동료들이 다쓰미 미노부의 기록,

사관장을 읽은 후에 겪게 되는 끔찍하고 기괴한 현상들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작자 미상에서 미궁초자라는 호러단편집을 읽은 사람들이

작품 속의 기이한 현상을 직접 겪게 되거나 심지어 감쪽같이 행방불명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백사당에서는 다쓰미 미노부의 기록을 읽은 미쓰다 신조와 그의 동료들이

느닷없거나 어이없거나 모호하기 짝이 없는 현상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 ● ●

 

다쓰미 미노부의 사관장을 읽은 미쓰다 신조는 괴담 편집자로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신이치로, 고스케 등 괴담 전문가인 친구들에게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자료를 조사하던 중 햐쿠미 가가 위치한 나라 현 다우 군에서

수년 전부터 연이어 아이들이 실종된 사건에 주목한 미쓰다 신조는

다쓰미의 기록과 햐쿠미 가의 당집 백사당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사관장을 읽은 동료가 실종되는가 하면, 다쓰미는 책의 출간을 거부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교토까지 다쓰미를 찾아간 미쓰다 신조는

직접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는 기괴한 현상들 때문에 극도의 공포에 빠지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쓰다 신조는 햐쿠미 가의 당집 백사당에 가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백사당에 다가갈수록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가 하면,

햐쿠미 가를 둘러싼 사악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물론

혼이 빠져나간 시신을 차지한 마물 마모우돈의 악의에 찬 기운을 몸소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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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장이 아무 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괴이한 현상들 그 자체만을 열거해놓았다면,

백사당은 그 현상들의 이면과 사연을 찾아가는 미스터리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가 햐쿠미 가의 백사당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괴담 편집자라면 누구나 매력을 느낄 만한 햐쿠미 가의 장송백의례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백사당에서 벌어진 두 번의 밀실 미스터리와 아이들의 실종 사건 때문입니다.

작가는 괴담과 미스터리라는 두 가지 테마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교묘히 섞어놓으면서 동시에 독자의 공포심이 극대화되도록 풀어놓습니다.

 

(괴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냐를 따져봤자 부질없지 않을까.

어쩌면 그 사람은 진짜로 그런 무서운 현상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무서워하는 것이 괴담을 즐기는 올바른 자세 아닐까.

허나 이 원고(사관장)처럼 진한 맛을 내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그 이야기의 진상을 실제로 확인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고개를 쑥 쳐든다.

 

작자 미상에서도 미궁초자라는 단편 괴담집을 읽은 미쓰다 신조와 신이치로가

괴담 속의 기이한 현상을 직접 체험하게 되는 공포를 맛보지만,

괴담의 수수께끼를 풀면 가까스로 그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탈출구가 있었던 셈인데, ‘백사당은 그런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수수께끼는 절대 풀리지 않고, 풀려고 하는 자에게는 끔찍한 응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느껴지는가 하면,

다쓰미가 기록한 사관장속의 장면들이 밤마다 악몽으로 떠오릅니다.

오히려 도망치려 할수록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끌려 들어가는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마물의 존재,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산과 숲,

뱀을 뜻하는 한자를 품은 수많은 지명들, 피부에 와 닿는 듯한 끈적이는 어둠 등

명백히 비현실적이고 환상에 다름 아닌 괴담 코드들로 가득 차 있지만,

백사당은 밀실 미스터리, 실종 사건,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비극 등을 빈틈없이 버무림으로써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읽는 듯한 사실적인 느낌까지 온전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가 괴담과 전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성적인 엔딩을 끌어냈고,

노조키메사관장이 괴담 그 자체를 서술해놓은 작품이라면,

백사당은 모든 것이 믹스된, 그러면서도 결코 친절하거나 깔끔한 엔딩이 아닌,

말 그대로 괴담의 여운을 진하게 남겨놓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반의 전개 부분이나 후반부에 밝혀지는 여러 가지 진상 가운데

일부는 , 이게 뭐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술 자체가 모호하게 돼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일반 미스터리나 스릴러처럼 빠른 속도로 읽은 탓에

앞서 등장한 상황이나 대화에서 제시된 결정적인 단서들을 놓쳤기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사관장백사당을 안 읽은 분이라면 천천히 정독할 것을 권하고 싶고,

(저 역시 그럴 계획이지만) 이미 읽은 분이라면 기회가 될 때 재독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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