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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 제56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요코제키 다이 지음, 이수미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냉정한 리더 게스케, 철부지 나오토, 개구쟁이 준이치, 말괄량이 마키코는 초등학생 시절이던 23년 전, 똘똘 뭉쳐 다니던 4총사였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와 불행 탓에 그들은 각자 모양새가 다른 공포와 트라우마를 끌어안게 됐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기 위해 기약 없는 타임캡슐 안에 그날의 흔적들을 담고 봉인했지만, 결국 4총사는 차례로 마을을 떠나면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잔인한 운명은 뜻밖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4총사를 23년 만에 다시 재회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그 사건의 열쇠가 23년 전 4총사가 겪은 사건과 연관됐다는 점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날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경찰의 수사는 결국 봉인됐던 4총사의 23년 전 기억을 무자비하게 열어젖힙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이나 톰 프랭클린의 ‘미시시피 미시시피’처럼 오랫동안 봉인해온 비밀이 어느 날 갑자기 해제되면서 ‘과거의 아픈 상처’와 ‘현재의 사건’이 교차되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8수 끝에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은 요코제키 다이의 ‘재회’는 그런 맥락에서 무척 기대가 됐던 작품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상의 만족과 여운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굉장한 트릭이 숨어 있지도 않고 유혈이 낭자한 사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독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4총사의 과거와 현재에 던져진 두 가지 물음 때문입니다.
“23년 전,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지금,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과 동시에 네 명의 인물이 번갈아 화자 역할을 맡아 전개됩니다. 두 개의 시제, 네 개의 시선 등 복잡한 서술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들이 천천히 한 곳을 향해 모여들다가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4총사는 완성된 큰 그림을 보는 순간 충격에 빠집니다. 같은 그림이었지만 4총사는 제각각 다른 형태와 색깔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겪은 불행이었지만 각자의 마음속엔 전혀 다른 트라우마가 뿌려졌다는 뜻입니다.
그런 4총사를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은 내내 착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그들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운명이란 것이 그들에게 조금만 덜 가혹했더라면, 이라는 부질없는 회한이 4총사 못잖게 독자의 마음에 피어오릅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과거와 현재에 던져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드러난 후에도 결코 착잡함과 부질없는 회한은 가시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는 그들의 지난 시간들, 기억들, 상처들이 안쓰럽고 애틋할 뿐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적절한 수의 인물과 에피소드를 배치한 덕분에 속도 빠른 독자들은 한나절이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웬만하면 수상작을 결정한 심사위원, 즉 기성 작가들의 ‘과찬’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재회’에 관한 한은 히가시노 게이고, 덴도 아라타, 온다 리쿠의 칭찬 릴레이가 결코 과장되거나 작위적인 홍보용 멘트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에도가와 란포 상 결선에 올랐던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 조만간 새로운 작품의 출간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퍼즐을 모으고 끼워 맞추는 역할은 가나가와 현경에서 파견된 특별한 형사 나라가 맡았는데, 팀플레이 대신 ‘독립군’ 노릇을 허락받을 정도로 뛰어난 추리를 자랑하는 캐릭터입니다. 그 역시 마지막 반전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는데, 요코제키 다이가 수상작가의 입지를 넘어 두드러진 활약을 하게 될 날이 온다면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도 있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이 작품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요코제키 다이의 ‘나라 시리즈’를 기대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