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그래닛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8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연쇄 강간살인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사경을 헤맬 정도로 중상을 입었던 로건 맥레이는 1년 만에 현장에 복귀하면서 부활한 성경 속의 인물 라자루스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로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연쇄 소아성애 살인사건입니다. 젤리와 캔디를 끼고 사는 인치 경위의 지휘 하에 과격한 여순경 왓슨과 팀을 이룬 로건은 강둑, 쓰레기장, 동물의 사체더미 등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어린 희생자에 충격을 받습니다. 더구나 항구에서 발견된 변사체 사건까지 떠맡은 로건은 겨울비와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사체 훼손 방법이나 발견된 지역 등 어디에도 공통점은 보이지 않고,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도 연이어 어린 소년과 소녀가 실종되는가 하면, 유력한 용의자라 확신했던 자들은 부족한 단서로 인해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갑니다.

 

원제인 ‘Cold Granite’차가운 화강암이란 뜻인데, 이 작품의 주 무대인 스코틀랜드의 3대 도시 애버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름이 채 안 되는 사건 기간 내내 겨울비와 눈이 쉴 새 없이 퍼붓는 것으로 설정돼있어서 서늘한 회색 돌덩어리 화강암으로 가득 찬 애버딘의 풍경을 더욱 차갑게만듭니다. 광풍과 눈비가 몰아치는 북해와 마주한 애버딘을 배경으로 한 로건 맥레이 시리즈의 첫 편의 제목으론 더없이 잘 어울리는 두 단어의 조합입니다.

 

원작 출간은 2005년이지만 읽다보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의 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잭 더 리퍼가 날뛰고 셜록 홈즈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느낌이랄까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휴대폰 등 21세기의 소품과 몇몇 현대적 설정을 제외하면 그 무렵에 출간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로건 맥레이의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캐릭터와 수사 방법에 있습니다. 그는 부활한 영웅 라자루스로 불리지만 책임감이 뛰어나다는 장점 외엔 물리적인 힘이나 사건을 추리하는 지능에 있어서는 오히려 평범한 쪽에 가깝습니다. 수사 방법 역시 안락의자 탐정이나 천재적인 추리와는 거리가 먼, 반복적인 탐문과 단서 찾기에 몰두하는 전통적인 경찰의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무자비한 폭력과 뛰어난 지능을 겸비한 슈퍼맨 주인공들에 비하면 로건의 캐릭터는 가끔은 답답해 보일 정도로 아날로그적이고 우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시리즈를 8편까지(2013년 현재) 이어지게 만든 그만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어딘가 배배 꼬인 듯한 독특한 영국식 유머 역시 아날로그 감성을 더욱 강하게 자극하는데, 참혹한 소아성애 살인사건의 와중에도 독자들에게 쉬어가는 여유를 제공하는가 하면 주인공 3인방 - 로건 형사, 인치 경위, 왓슨 순경 - 의 캐릭터를 유쾌하고 개성 있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마치 영드 화이트 채플의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읽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다만, 읽는 도중에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또는 곁가지가 너무 많다는 인상을 종종 받았는데, 결국엔 그 모든 설정이 작가의 의도라는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메인 스토리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파생 사건들에게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 바람에 굳이 600페이지라는 분량이 필요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다잉 라이트가 출간됐는데, 타고난 재능 대신 매사에 열심인 영웅 로건 맥레이의 활약은 물론 임시 상관이었던 인치 경위, 로맨스가 닿을까 말까 했던 왓슨 순경과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분량도 500페이지로 많이 슬림해져서 곁가지 없는 알찬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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