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관 시리즈첫 편인 십각관의 살인을 읽은 지 거의 5년 만에 2편을 읽게 됐습니다. ‘십각관의 살인이 특이하긴 해도 현실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뤘다면, ‘수차관의 살인은 이야기의 무대와 서사 모두 호러와 미스터리가 융합된 기이한 분위기를 품고 있어서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1년 전 경찰에 의해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던 살인사건과 1년 후인 현재, 같은 인물들이 같은 공간(수차관)에 모여든 상황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 번갈아 전개됩니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과거와 현재를 정교하게 교차시킨 뛰어난 구성의 진가는 후반부에 가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라면 어딘가 삐딱해 보이는 괴짜 탐정 시마다 기요시가 가세한 점뿐인데, 그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리낄 것 없이 수차관을 휘젓고 다니며 크고 작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2년에 걸쳐 벌어진 참혹한 연쇄살인의 진상을 추리하다가 결국 아무도 예상 못한 진범을 확정합니다. 시마다 기요시의 이런 추리는 십각관~’ 때와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여주는데, 두 작품의 차이는 작가의 후기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십각관의 살인은 커다란 한 방으로 승부한, 말하자면 기습적인 놀라움을 노린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본격 미스터리의 경향이 조금 더 강한, 즉 주어진 단서를 이용해 진상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자 특징은 주 무대인 수차관의 독특한 분위기와 구조, 그리고 그런 공간에 걸맞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조합입니다. 수차관은 일본 미스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서양식 저택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지만, 거기에 덧붙여 발전(發電)을 위해 설치한 거대한 3대의 수차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더욱 배가시킵니다.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은 거대한 3개의 수차는 이 저택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 골짜기에 정지시켜놓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수차관의 설계자가 시리즈 첫 편의 무대인 십각관을 지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설정은 이곳에서 벌어질 참혹한 비극에 대한 예고나 다름없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도 공간적 배경 못잖게 특이합니다. 10여 년 전 끔찍한 사고로 인해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것은 물론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고무가면 뒤에 숨긴 채 살아가야 하는 41살의 후지누마 기이치, 9살 때 고아가 된 자신을 거둬준 22살 연상의 기이치의 아내가 된 후 수차관의 탑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19살의 유리에를 비롯하여 호러물에 어울릴 듯한 다양한 조연들이 수차관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킵니다.

 

의문의 추락사, 토막 난 채 소각로에서 발견된 피살자, 밀실에서 증발된 용의자 등 1년 전 태풍이 몰아치던 밤에 벌어졌던 기이한 사건들에 이어 1년 후 같은 날, 똑같이 태풍이 다가오는 순간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시마다 기요시의 본격 미스터리 수차관의 살인은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역사도 역사지만, 내용이나 완성도 면에서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을 읽기까지의 5년이란 공백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는데,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저의 게으름과 신간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젠 거의 방치 수준에 이른 관 시리즈를 조만간 책장에서 모두 구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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