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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상어 -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 01 ㅣ 뫼비우스 서재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너무 직설적인 제목과 어딘가 B급 정서가 느껴지는 표지 때문에 숱하게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품절’ 상태가 된 뒤에야 중고 상품으로 구한 작품입니다.
끝 모를 환락과 치명적인 위험이 공존하는 신주쿠의 밤풍경, 엘리트의 길을 포기한 채 타협 따윈 개나 줘버린 고독한 상어 같은 형사 사메지마, 14살 연상의 사메지마를 사랑하는 밴드 보컬이자 ‘로켓 젖가슴’을 지닌 22살의 매력녀 쇼, 그리고 동료들의 비협조와 시기 속에 경찰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 나선 사메지마의 집요한 수사와 목숨을 건 위기일발의 액션 등 매력적인 캐릭터에 미스터리한 사건이 잘 조합된 웰 메이드 엔터테인먼트 경찰 소설입니다.

1990년부터 2006년까지 9편의 시리즈가 성공적으로 출간된 것은 전성기의 홍콩 느와르를 연상시키는 적절한 선정성과 풍부한 오락성 덕분이겠지만, 네 번째 작품인 ‘무간 인형’(1993년)이 나오키 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사메지마 시리즈’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선 ‘뭔가 특별한 미덕’을 지녔다고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기구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메지마의 과거사가 눈길을 끄는데, 보장된 미래보다 경찰로서의 원칙을 선택한 탓에 만년 경감이라는 낙오자 처지가 되었지만, 신주쿠 상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관용의 원칙을 고수하며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 속에는 슈퍼 히어로의 포스와 고뇌에 찬 정의남(正義男)의 이미지가 잘 믹스되어 있어서 장르물의 주인공이라는 외형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건 자체만 보면 그리 복잡하지도 않고 미스터리가 강조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액션물처럼 빠르게 전개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감도 만끽할 수 있어서 페이지는 쉴 새 없이 넘어갑니다. 다만, 분량 면에서 볼 때 사건 자체에 관한 묘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탓에 매력적인 하드보일드 캐릭터 사메지마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면이 덜 그려졌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경찰소설의 대가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트릭이나 미스터리 못잖게 ‘인간에 대한 관찰’이 깊이 있고 진정성 있게 묘사됐기 때문인데, ‘신주쿠 상어’의 경우 시리즈의 첫 편이라 그런지 조금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는 2009년 ‘신주쿠 상어’ 이후로 더 이상 소개된 작품이 없는데(1990년대에 이 시리즈 일부가 출간되긴 했습니다), 출간된 해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이력을 감안하면 후속작 불발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전부는 어렵더라도 나오키 상을 받은 ‘무간 인형’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그런 기회가 찾아와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