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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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도 못한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서,

한 번 사슬을 끊어도 다른 곳에서 연결되어 있나 봐요.”

 

꽃 사슬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사쓰키가 남긴 말입니다.

인연이란 말로 대신해도 문맥이 통하는 문장이지만,

사슬이라는 단어는 왠지 인연의 예쁘고 좋은 면보다는

안타깝거나, 후회되거나, 잊고 싶거나, 지워지지 않는 화인 같은,

그런 밝지 못한 면을 떠오르게 하는 표현인 듯합니다.

그런데 그 사슬의 마디마디가 꽃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중의적이고 역설적인 제목만으로도

작품 속 인물들의 평탄하지 못한 인생경로를 예감할 수 있습니다.

 

꽃 사슬에는 세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미유키(美雪), 사쓰키(紗月), 리카(梨花)가 그들인데,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각각의 이름에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한자(, , )가 들어가 있지만,

정작 세 여자의 삶에서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은 이리저리 엮인 꽃의 사슬로 인해

제대로 음미해볼 틈도 없이 그저 순간에 불과한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남편과 함께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누리다가 한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 여자,

기막힌 사슬 덕분에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또다른 기막힌 사슬로 인해 비극에 빠진 여자,

자신을 둘러싼 사슬의 미스터리를 캐기 위해 그 열쇠를 쥔 미지의 남자를 찾아 나선 여자 등

사슬 또는 인연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간 세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세 여자의 이야기는 한 챕터씩 교차되며 서로 무관한 듯 전개되다가

천천히 베일이 벗겨지면서 퍼즐 조각처럼 모여들고, 끝내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됩니다.

 

사실 꽃 사슬은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단 한 개의 단어만으로도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절대 보지 말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 작품의 매력을 소개하고픈 욕심에

스포일러 없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뒷면의 홍보카피를 인용하자면,

 

비밀을 그러안은 세 여자.

한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다른 한 여자는 진실을 원하며,

또 한 여자는 과거를 지우려 한다.

 

사실 정서나 분위기를 무시하고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축약해놓고 보면

TV드라마에서 많이 본 우연과 막장이 난무하는 스토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각각의 개인사는 딱히 신선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녀들이 꽃의 사슬을 통해 만나는 인물이나 겪게 되는 비극 역시 낯선 장면들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그녀만의 소리 없이 강한문장들과

비극마저 꽃보다 아름답게 그려내는뛰어난 표현을 통해

함부로 축약될 수도, 쉽게 폄하할 수도 없는 묵직한 서사를 구축했고,

고백이나 왕복서간등을 통해 보여준 섬뜩한 형식미를 통해

상투적인 개인들의 비극을 긴장감 없이는 읽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단서는 수두룩하지만 서로를 연결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흐릿한 형태로만 보일 뿐인 꽃의 사슬의 실체는 뒷이야기에 대한 조바심까지 일으킵니다.

특히 세 여자의 이야기의 접점이 눈에 들어올 무렵부터는

비밀, 거짓말, 미스터리 등의 코드가 한꺼번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그 순간, 엄청난 힘으로 폭주했던 고백의 미나토 가나에가 떠오른 것은

단지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고백이후 연이어 아쉬움을 느껴야했던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으로 작가인생 제2막이 시작된 듯합니다.”라는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나

미나토 가나에의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가

양치기 소년의 습관적인 외침(?)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꽃 사슬은 미나토 가나에가 오랜만에 자신의 진면목을 발휘한,

그래서 그녀의 이름과 고백의 여운을 기억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미나토 가나에 식 미스터리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어 한 독자들에겐

비교적 소프트한서사로 인해 100% 만족감을 얻기 어려운 작품일 수도 있지만,

꽃을 이야기하며 그 안의 향기와 가시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게 한 꽃 사슬이야말로

어지간히 독한 이야기보다 더 큰 느낌과 더 많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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