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언덕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후 세 번째 만나는 가나리야 시리즈입니다.

앞선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애틋한 제목과 추억을 떠올리는 풍경화 같은 표지 덕분에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반딧불 언덕에는 표제작을 포함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16년 전, 자신의 꿈을 위해 연인을 떠났던 한 남자가 뒤늦게 비밀을 알게 되는 반딧불 언덕’,

감동적인 검은 고양이 곤타 이야기와 선술집 단골들의 음모(?)를 그린 고양이에게 보은을’,

오래된 화방을 지키며 파리로 떠난 연인을 기다려온 한 여인의 이야기 눈을 기다리는 사람’,

미스터리의 늪(?)에 빠진 가나리야 단골들의 이야기를 그린 두 얼굴’,

연인 같았던 삼촌과의 추억이 담긴 환상의 소주(燒酒)에 관한 이야기 고켄등입니다.

 

어두운 산겐자야 골목 한 편에 두둥실 떠있는 사람 크기만 한 초롱,

그 한가운데에 새카맣고 느긋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가나리야’,

그리고 마치 현실과 격리된 낯선 세상으로의 통로처럼 보이는 검게 그을린 삼나무 문은

시리즈 수록작마다 조금씩 다른 문장들로 표현되긴 했지만,

이젠 머릿속에 그 그림이 구체적으로 그려질 정도로 선명하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며,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요리사이자

너무나도 사소한 단서 하나로 추측에 추측을 거듭한 끝에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안락탐정 구도 데쓰야도 이젠 반가운 이웃집 남자처럼 여겨집니다.

더불어, 국적은 불분명하지만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할 정도로 미각의 진수를 담고 있고,

도수 높은 맥주를 절로 생각나게 하는 구도 데쓰야만의 아기자기하고 특별한 레시피 역시

언제나처럼 책을 읽는 내내 침샘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다만 반딧불 언덕에서는 요리에 할애된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조금 거슬리기도 했네요^^)

 

수록작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 중 가나리야를 처음 찾은 인물은 세 명입니다.

반딧불 언덕의 아리사카, ‘눈을 기다리는 사람의 난바라, ‘고켄의 다니자키가 그들인데,

그들은 하나 같이 처음 들른 가나리야에서 안락함과 오래된 단골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부지불식간에 구도나 다른 단골들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신에게 놀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수수께끼나 의문에 대해 실은 이런 게 아닐까요?”라며

해답 또는 가려졌던 진실을 넌지시 건네는 구도를 보곤 더욱 크게 놀랍니다.

거듭된 놀람 끝에 가나리야 초보자들이 대체 그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었는지..”라고 물으면

누군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나리야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그 말을 입에 담아요.”

 

따뜻하든 가슴 아프든 하나 같이 잊히지 않는 추억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사람들은

가나리야에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고, 오해했던 진실을 깨닫고, 혐오했던 자신 또는 타인을 용서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왠지 지금까지보다는 맑고 따뜻한 날들이 자신을 기다릴 것 같다는 안도감을 찾습니다.

세상을 떠난 연인의 비밀과 상처를 구도 덕분에 알게 된 반딧불 언덕의 주인공 아리사카는

뒤늦게 자책과 회한에 빠지지만 동시에 이제라도 그녀에게 사죄할 수 있음을,

, 그녀를 잊지 않고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사죄하는 일은 분명 괴롭지만,

동시에 달곰쌉쌀하다고 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 (‘반딧불 언덕)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제 가나리야 시리즈는 한 편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 앞선 시리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 ‘가나리야를 아십니까?’이며,

단골들이 총출동하여 가나리야에 얽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것은 구도 본인의 베일 속에 숨은 이야기인데,

반딧불 언덕에 수록된 눈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구도의 친구이자 바텐더인 가즈키가 구도에 관해 남긴 의미심장한 한마디는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다뤄질 구도의 비밀과 추억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라는

제멋대로지만 조심스런 추측을 하게 만듭니다.

 

그 녀석(구도)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아주 옛날부터.”

 

그럭저럭 10년이 넘은가나리야에서 구도가 기다려온 사람은 누구일지,

구도와 그()가 공유했던 추억과 상처는 무엇일지,

가나리야의 단골들은 구도를 위해 어떤 세리머니와 선물을 준비할지,

그리하여 구도는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지,

한참 앞선 느낌이지만 궁금함과 기대, 그리고 아쉬움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마지막 작품이라 손에 넣고도 아까운 마음에 쉽게 읽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한시라도 빨리 출간되기를 바라는 것은 한없이 간사한 독자의 마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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