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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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였고, 그 작품에 등장하는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라는 피아노 소곡집은 주인공 쓰쿠루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거의 소설의 일부나 마찬가지여서 책을 읽던 도중 기어이 음원을 찾아내선 반복해서 들으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음악이 친숙한 관계라는 것은 그의 작품을 두세 편만 읽어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음악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내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클래식이라곤 상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문외한이다 보니 오자와 세이지라는 이름은 물론 그의 위상조차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게 사실이지만, 이 작품이 그에 대한 전기나 인물론이 아닌 그와의 대화록 모음집이란 형식으로 꾸며진 점은 더욱 파격적이었습니다.


 

여러 작품에서 클래식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녹여낸 것을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편력은 가공할 연륜을 지닌 것임에 틀림없지만, 거장 오자와 세이지와의 대화 속에서 그는 스스로 문외한임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도가 지나친 겸손이라는 약간의 삐딱한(?)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오자와 세이지와 나누는 대화를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겸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배우고자 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기술적인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이르고 있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교향곡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언어가 외계어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행간에 녹아있는 두 거장의 열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자 역시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미리 듣거나 혹은 들으면서 읽어야겠지만, ‘DVD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독자에게 그런 수고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자는 식의 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 왜 이런 독특한 형식의 책을 낼 생각을 했는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초반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 작품이 오자와 세이지의 인물론이 아님을 거듭 밝혔지만, 실은 지휘자로서 그가 걸어온 길, 유럽과 미국에서 겪은 굴곡과 환희로 채워진 다채로운 경험들, 그리고 음악을 대하는 그만의 개성 있는 태도 등에 좀더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어서 궁극적으로는 거장의 삶의 향기와 발자취를 이야기하고 싶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시간을 들여야만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의 경우 벼락치기하듯 하루아침에 내공과 연륜을 쌓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클래식을 공부하겠다고 하루 종일 교향곡을 듣고, 작곡가와 곡명과 음악의 사조를 외워봤자 오랜 시간 사심 없이 편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겨온 사람 앞에서는 한낱 치졸한 지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60년 넘게 야유와 찬사 속에 지휘자의 삶을 살아온 오자와 세이지나 오랜 시간 음악을 통해 행복감을 만끽해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에 관한 애정과 정열은 왜 그들이 거장으로 불리는지 쉽게 이해하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구스타프 말러에 관한 대화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도전할 수 없었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던 말러에 관한 이야기며, 동 시대를 살았던 프로이트와의 관계,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예술과 풍경 등은 두 거장의 묘사 덕분에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고 말러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오자와 세이지가 밀라노에서 오페라 지휘를 하며 야유를 받은 일, 시카고 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지만 단원들에게 샤워를 통해 응원 받은 일, 오직 뛰어난 음악가를 키우기 위해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힘쓰는 그의 노력 등도 흥미로운 에피소드였습니다.

 

제겐 미지의 영역인 클래식에 관한, 그것도 낯설고 특이한 대화록 형식의 작품이었지만, 다 읽고 난 후 , 이런 책읽기도 나름 재미있네.”라는 느낌이 절로 든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아마도 대화체에서도 묻어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매력 있는 문장들과 자신들의 열정을 꾸미지 않고 드러낸 두 거장의 진정성 덕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오자와 세이지를 좋아하는 수준 높은 클래식 애호가나 클래식에 관심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에겐 더욱 반가운 작품이 돼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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