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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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전쯤 구판으로 읽은 꽃밥에 대한 기억은 따뜻한 단편들이었다는 아련한 느낌과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었다는 막연한 잔상이 전부였습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때라 그 이야기들을 온전히 기억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는데

8년 만에 나온 개정판을 운 좋게 손에 넣은 덕분에

슈카와 미나토가 그려낸 6편의 주옥같은 단편들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단편집 오늘은 서비스데이처럼 꽃밥역시 죽음, 환생, 영혼 등을 다루고 있는데,

오늘은 서비스데이가 소동극 또는 라이트한 호러물의 느낌이 강했다면,

꽃밥은 지금은 중년이 된 주인공들이 오래 전의 유년기에 겪었던 소소한 일상들을 회상하며

그 안에서 마주쳤던 죽음이나 영혼의 문제를 고백하는 따뜻한 서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환생과 가족애를 다룬 표제작 꽃밥’,

재일한국인과의 우정과 귀신 해프닝을 그린 도까비의 밤’,

소녀의 성장기와 가족의 붕괴를 성()과 결부시킨 요정 생물’,

요절한 삼촌의 장례식에 등장한 세 여자의 소동극 참 묘한 세상’,

산 자의 목숨을 거두는 언령(言靈)에 관한 이야기 오쿠린바’,

따돌림 당한 소년이 만난 신기루 같은 여자 이야기 얼음 나비

대부분의 작품이 죽음이라는 무겁고 원초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비극의 여운을 남겼던 요정 생물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읽는 동안 한번쯤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순간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죽음 자체는 그 어떤 경우라도 본인은 물론 살아남은 자들에게 힘든 여정이지만,

꽃밥속의 죽음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숙명처럼 공평하게,

그리고 때론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축복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오사카의 변두리 연립주택단지에서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연이 대부분 죽음을 계기로 끊어지거나 깨지곤 하지만,

왠지 꽃밥속의 죽음들은 내세에 다시 만날 것을 보장받은 휴식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죽음으로 인해 헤어졌던 전생의 가족과 고향을 찾아가는 아이 (꽃밥),

차별과 병치레 속에 세상을 떠났지만 유쾌한 귀신이 되어 돌아온 아이 (도까비의 밤),

죽어서도 바람둥이 기질을 버리지 못해 영구차를 멈추게 만든 백수 삼촌 (참 묘한 세상),

고통 대신 안락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제공하는 괴짜 할머니 (오쿠린바)

죽음과 결부된 인물들 모두 죽었지만 죽은 것 같지 않은, 얼마 안 있으면 다시 만날 것 같은,

그래서 슬프고 아쉬워도 충분히 그()의 부재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캐릭터들입니다.

온통 죽음을 다룬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끝이라는 비극성보다

웃으면서 그()를 보내주는 듯한 훈훈함이 남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판타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서사들로 가득 차있고,

빈곤의 그늘이 훨씬 더 컸던 1960~70년대 오사카의 변두리라는 낯선 공간이 주 무대인데다

곳곳에 일본식 정서가 진하게 배어있는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화감을 못 느꼈던 것은

꽃밥에 담긴 이야기들이 문화와 세대를 건너뛰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에 실린 작품 해설과 번역자의 후기에서도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정 시대나 세대,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그리움’(작품 해설)이라든가,

세월이 흘러 다시금 펼쳐 본 꽃밥이 이리도 애잔하게 가슴을 적시는 것은 각 단편이

보편성이라는 힘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번역자 김난주 님의 후기)라는 설명은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혹독하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치유와 위로를 받고 싶은 독자라면,

온 세상이 아날로그였던 그 시대의 끄트머리라도 잠시 살아봤던 독자라면,

, 아사다 지로의 단편에 마음이 움직였던 독자라면,

주말의 하루쯤, 슈카와 미나토의 꽃밥과 만나볼 것을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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