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의 저주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8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유치원 시절, 외가에서 겪은 기이한 사건 이후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

즉 죽음의 그림자나 증상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된 쓰루야 슌이치로는

무녀인 외조모의 도움으로 탐정사무소를 열고, 첫 의뢰인인 나이토 사야카를 맞이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약혼자 아키라의 죽음 이후 이리야 가()에서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멀쩡하던 조각상이 넘어져 다치는가 하면,

사지가 마비되거나, 미각을 잃거나 서가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나는 등

온 가족에게 괴현상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덧붙여, 13개의 막대가 그려진 괴편지까지 가족 개개인에게 날아들었습니다.

 

이리야 가를 방문한 슌이치로는 사야카를 비롯한 이리야 가 가족들의 사상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끔찍한 장면으로,

머지않아 이리야 가에 연이은 죽음이 찾아올 것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겪은 현상들 곳곳에 ‘13’이라는 숫자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 외에

슌이치로는 괴현상과 괴편지, 그리고 끔찍한 사상 사이의 연관성은 물론

제대로 된 단서 하나 찾지 못한 채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냈고,

결국 이리야 가의 사람들은 하나씩 차례로 변사를 당하게 됩니다.

 

● ● ●

 

도조 겐야 시리즈나 작가 시리즈, 그리고 최근 출간된 노조키메등을 통해

공포와 괴담의 진수를 선보인 미쓰다 신조의 새로운 사상학 탐정 시리즈 첫 편입니다.

쓰루야 슌이치로는 미쓰다 신조의 단편집 붉은 눈에 실린 죽음이 으뜸이다를 통해

살짝 맛보기만 했던 캐릭터인데, 결국 장편 시리즈의 주인공이 돼서 돌아왔습니다.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슌이치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타인의 죽음을 알아보는 특이한 능력을 얻게 된 유치원 시절에 겪은 사건이나

그 이후 저승사자, 귀신 들린 아이로 비난받으며 은둔형 외톨이가 된 그의 성장기,

그리고 그를 보살피고 키워준 뛰어난 무녀인 외할머니 이야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작품의 소재가 될 정도로 흥미 있게 묘사됐습니다.

 

타인과의 소통에 익숙하지 않아 삐딱하고 까칠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다,

사상을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곳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던 슌이치로가

첫 사건인 이리야 가 연쇄변사에 뛰어든 후 여러 사람과 맞부딪히며 겪는 성장통(?)

그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 못잖게 깨알 같은 재미를 던져줍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나 노조키메가 문명과 동떨어진 자연이나 외진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 작품은 도쿄 한복판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현대의 도시괴담이라

상식으론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괴현상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범인이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괴현상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무서운 주술의 힘이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적잖은 위화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누가 범인인가’, 보다 괴현상은 범인의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주술의 힘인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으며,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미쓰다 신조는 작품 곳곳에 제법 많은 힌트를 깔아놓습니다.

아예 대놓고 ‘13의 저주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데서 알 수 있듯,

작품 속에는 숫자 13과 관련된 많은 정황들이 등장하는데,

그 정황들은 독자를 위한 힌트이자 독자를 보기 좋게 속이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범인의 정체에 신경 쓰기보다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슌이치로가

더욱 비현실적인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풀어가는가, 를 음미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기에,

너무 힌트나 함정에 매몰되거나 머리를 굴리면서 읽을 것이 아니라,

미쓰다 신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여유 있는 책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명백한 단서와 증거보다는 랜덤하고 이해 불가능한 현상들이 등장하고,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과학적 추리보다는 직관이나 느낌에 좀더 의존하는 내용이다 보니

본격이나 사실감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을 수도 있고,

공포나 괴담을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 미쓰다 신조의 팬 중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신화와 전설을 동반한 도조 겐야 시리즈를 좀더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일단 시리즈 첫 편으로서 주인공 슌이치로의 매력을 잘 이끌어낸 점,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무수한 떡밥을 사방에 깔아놓은 점,

특히 운명적으로 조우할 것이 분명한 엄청난 힘을 지닌 적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점 등은

앞으로 이어질 슌이치로 시리즈를 여러 면에서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은 탐정으로서도 어설프고, 인간관계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는 미숙아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호감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상학 탐정 쓰루야 슌이치로가

두 번째 편에서는 어떤 사건을 통해 인간과 탐정으로서 쑥쑥 성장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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