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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섬 - 악마를 잡기위해 지옥의 섬으로 들어가다
나혁진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1월
평점 :
카베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강력범죄자를 영원히 격리시키기 위해 필리핀으로부터 임대한 일명 교도섬입니다. 전기 철조망 외엔 제대로 된 수감시설도, 교도관도 없는 탓에 10년 만에 ‘악당들의 섬’으로 변질됐습니다. 사이비 종교집단이 섬을 장악했고, 권력과 부의 서열이 만들어졌으며 매춘과 마약이 횡행합니다. 이곳에 엘리트 경찰 출신의 연쇄살인범 장은준이 수감됩니다. ‘악마를 잡기위해 지옥의 섬으로 들어가다’라는 부제대로 장은준은 자신의 가족을 붕괴시킨 사이코패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수감돼있는 교도섬에 스스로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긴 장은준은 교도섬 선배인 추웅과 이강생의 도움으로 섬에서 벌어진 여러 미스터리를 풀어내며 불가능해 보이던 복수극 미션에 매진합니다.
교도섬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긴장감 넘치는 액션이 잘 조합된 엔터테인먼트 스릴러입니다. 사적인 복수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잔인한 연쇄살인범이 되어 교도섬에 수감되기를 자청한 장은준의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장은준을 돕는 전설의 암살자 추웅이나 꾀돌이 이강생도 주연 못잖은 역할을 해냅니다.
이야기는 장은준의 복수극 외에도 교도섬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을 두루 건드리는데, 필리핀 창녀살인사건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시퀀스나 추웅의 과거 속에 숨어있는 음모를 파헤치는 대목에선 전직 엘리트 경찰로서의 장은준의 뛰어난 능력이 십분 발휘됩니다.
홍보카피만 봤을 땐 ‘배틀 로열’이나 ‘헝거 게임’과 유사한 고립된 곳에서의 추격 액션물이라고 예상했는데 ‘악당들이 세운 그들만의 천국’이라는 설정은 이야기를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어냈습니다. 악당들의 영구 격리를 위해 만들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감시의 손길은커녕 활기찬(?) 자본주의의 천국으로 변질된 교도섬이 구석구석 소개될 때마다 작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돋보였습니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신나게 놀아보고 싶었던 저자의 치기’의 산물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교도섬’에는 추리, 무협, 액션, 모험 등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요소가 녹아들어있고, 필리핀 해안의 절경이나 거칠고 위험한 밀림은 물론 식민지 시대의 건물 등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공간들도 다수 등장해서 영상물로 제작될 여지도 충분해보입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을 꼽아보자면, 가족을 붕괴시킨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장은준이 한때 본연의 임무를 잊고 ‘즐거운 날들’을 보내는 시퀀스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강생과 처음 만난 이후 약 100여 페이지에 걸쳐 장은준은 스스로 ‘즐거운 날들’이라고 표현할 만큼 교도섬에 들어온 목적을 망각한 채 추웅, 이강생과 함께 야생의 삶을 만끽합니다. 복수를 펼칠 방법을 찾지 못해 낙심한 채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땐 “여긴 도대체 왜 온 거야?”라는 반문이 저절로 나올 법한 이상한 장면들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조연들에 관한 것인데, 우선 추웅은 뒤로 갈수록 주인공이 뒤바뀐 건가, 할 정도로 그 역할이 장은준을 넘어섭니다. 장은준이 지능과 액션을 겸비한 슈퍼맨이 아닌 것은 사실적인 설정이었지만, 처음부터 추웅의 도움을 기대라도 한 듯한 모습이나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의존하는 모습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또한 가족을 잃은 장은준 입장에서 볼 때 연쇄강간을 저질러 교도섬에 수감된 이강생은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쓰레기 중의 쓰레기가 분명한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와 인연을 맺는 모습은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은준의 복수의 대상인 ‘악마’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했다는 점입니다. 포악한 본능이 하늘을 찌르든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든 엄청난 폭력재능을 지니고 있든 뭐 하나라도 장은준을 위협할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면에서든 기대에 한참 못 미친 게 사실입니다. 또한 ‘악마’에 대한 묘사 역시 분량도, 표현의 수위도 너무 미미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지옥의 섬에 들어온 장은준의 의지까지 맥없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총평하자면, 384페이지라는 적당한 분량에 재미와 몰입감을 갖춘 흥미로운 액션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아쉬움은 있지만 이 작품의 미덕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탄생시킨 교도섬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복수를 위해 그곳에 잠입한 매력적인 주인공이라고 생각된 바, ‘신나게 놀아보고 싶었던 저자의 치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권총 한 번 쏘기 어려운 척박한 대한민국 스릴러의 토양 위에서 신선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의 필력 역시 후속작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나혁진의 데뷔작 ‘브라더’는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보니 그가 만들어낸 ‘암흑가에 몰아치는 피비린내’가 어떤 모양일지 급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