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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의 불가사의 ㅣ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아주 어릴 적 청소년용으로 번역된 ‘X의 비극’, ‘Y의 비극’,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등을 읽은 후론 엘러리 퀸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만난 현대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에 빠져들다 보니 홈즈, 뤼팽, 푸아로 등 한때 열광했던 고전의 주인공들도 엘러리 퀸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선지 오랜만에 만난 엘러리 퀸은 낯설지만 반가운, 또 새로운 느낌을 전해줬습니다. ‘열흘간의 불가사의’는 ‘라이츠빌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엘러리 퀸이 가상의 소도시 라이츠빌에서 펼친 세 번째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엘러리 퀸은 10년 전 파리에서 인연을 맺었던 하워드 밴혼의 초대를 받아들여 라이츠빌에 있는 밴혼 가의 대저택을 방문합니다. 하워드의 아버지인 디드릭은 라이츠빌의 산업계를 대표하는 거물이며 6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30년 연하의 샐리와 재혼했습니다.
밴혼 가에서의 첫날밤을 보내며 퀸은 밴혼 가족에게서 까닭모를 불길한 느낌을 받습니다. 더구나 방문 이틀째 만에 퀸은 밴혼 가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후 연이어 벌어지는 절도와 협박 사건에 말려들어 곤혹스러운 처지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의 불길한 느낌대로 밴혼 가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퀸은 흩어져있던 단서들과 밴혼 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해프닝들을 통해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가족과 경찰 앞에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 과정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괴이하고 정교한 패턴을 지니고 있어서 그 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은 물론 미국 전역을 큰 충격에 빠뜨립니다.

이야기를 좌지우지하는 큰 설정이 비교적 초반에 노출되긴 하지만 그 부분을 서평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서 일부러 피했고, 사건의 ‘패턴’ 역시 단어 하나만으로도 너무 많은 암시를 줄 수 있어서 제외시키고 보니 써놓은 줄거리가 참 애매하고 모호할 따름입니다.
퀸이 첫날부터 불길한 느낌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밴혼 가의 독특한 인물들 때문입니다. 산업계의 거물이자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는 아버지 디드릭, 빈민가 출신이지만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으며 30년 연상의 디드릭과 결혼한 샐리, 아버지 디드릭을 숭배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또 벗어나고 싶기도 한 하워드, 밴혼 가의 말썽꾸러기이자 트러블메이커로 하워드의 경멸을 받는 숙부 울퍼트, 그리고 밤이 되면 저택을 돌아다니는 100살에 가까운 기괴한 노파 등 하나같이 어딘가 비틀려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들입니다. 결국 밴흔 가의 비극은 이 비틀린 관계에서 출발했고, 그 종착역은 수많은 인물들의 참혹하거나 안타까운 죽음으로 장식됩니다.
퀸이 밝혀낸 사건의 진상과 ‘패턴’은 약간 작위적이긴 해도 놀랄 만큼 빈틈없이 짜여있고, 마지막 반전은 “왜 엘러리 퀸인가?”라는 우문에 대한 현답을 보여줍니다. 서사의 무게는 단지 ‘오래 전에 출간된 고전’이라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단출한 무대와 소규모의 등장인물만으로도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과 갈등을 다채롭고 깊이 있게 다룬 엘러리 퀸의 필력에 기인합니다. 좀 현학적인 문장이긴 하지만 출판사의 소개글 일부를 편집해서 인용하자면,
“욕망과 애증, 집착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몸부림치다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그리스 비극을 보는 듯한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쉬운 점들도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띈 점은 퀸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전까지의 조금은 지루한 전개입니다. 인물간의 비밀스러운 관계나 연이어 발생한 절도와 협박사건은 이야기의 도입부로서는 그리 큰 긴장감을 주진 못하는 설정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비극적인 사건을 야기하는 단초나 진실을 입증하는 단서로 활용되긴 하지만, 그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왠지 장르물이 아닌 ‘애증물’을 읽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라이츠빌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보니 앞선 두 작품(‘재앙의 거리’, ‘폭스가의 살인’)에 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퀸의 심리나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경우가 많았고, 그 분량도 꽤 많이 할애된 탓에 두 작품을 안 읽은 독자에게 당혹감을 느끼게 한 점입니다.
세 번째는 엘러리 퀸이 한방에 모든 것을 끝장내는 ‘신의 경지’를 선보인 점입니다. 실제 내용 중에도 엘러리 퀸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에 빗대고 있는데, 이는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란 뜻으로 그리스극에서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켜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야기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 또는 그 존재를 뜻합니다. ‘번뜩이는 이미지처럼 그냥 떠오른 영감’ 덕분에 퀸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합니다. 물론 이런저런 복선도 깔아놓았고 단서도 흘려놓았기에 논리적인 추론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한방에 사건을 해결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서의 퀸의 역할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엘러리 퀸의 고전미와 만난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보듯 풍경이나 인물에 관해 꼼꼼히 설명한 문장들이나 당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인물들에 대한 풍부한 설명은 요즘의 장르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고전이라고 하면 올드함을 먼저 떠올리는 독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올드함을 ‘기본에 충실하고 꾀를 부리지 않는 우직함’이라고 해석하고 싶고, 그런 면에서 Oldies but Goodies로서 퀸의 매력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열흘간의 불가사의’를 좀더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라이츠빌 시리즈’의 첫 편부터 순서대로 읽을 것과 아주 천천히 정독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