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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탐정과 일곱 개의 살인
우타노 쇼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읽은 작품의 수도 그렇고 호감의 정도도 그렇고 어느 면에서나 저는 우타노 쇼고의 열렬한 팬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 20편 중 고작 6편 밖에 읽지 못한데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시나노 조지가 등장했다는 ‘집 시리즈’는 아직 한 편도 못 읽었고, 그의 대표작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서술트릭의 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전 꽤 큰 실망만 느끼다가 중도에 포기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 소식이 들리면 “이번엔 뭘까?”라는 호기심이 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영역과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작가이니만큼 계속 관심권 안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방랑탐정~’의 경우 부담 없는 단편집인데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워낙 독특해서 우타노 쇼고 특유의 단편의 맛을 느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 게 사실입니다.
‘방랑탐정~’은 1990년대 후반에 쓰인 작품이지만 주로 198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한 8편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마구무시’가 개정판에 추가되어 제목과는 달리 8편이 수록됐다고 합니다.

시나노 조지의 외모는 표지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입니다. 1년 내내 노란 탱크탑 한 벌에 머리는 산발인 채 돌아다닙니다. 표지엔 안 그려졌지만 신발 역시 비치샌들 하나만 고집합니다. 음악에 미쳐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록밴드에서 드럼을 담당하고 있으며 중퇴와 신입을 반복하면서 만년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가 묵는 기숙사나 하숙집 또는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는 마치 운명처럼 살인사건이 벌어지곤 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에피소드에서 시나노는 경찰을 무능하고 초라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집 시리즈’에서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독 경찰이 끼어들 때마다 그는 경찰을 무시하거나 반드시 이겨야할 상대로 여깁니다. 자신이 먼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유력한 증거나 단서를 감추곤 합니다. 경찰에 대한 그의 반감 또는 불신이 어떤 연유에서 시작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그렇다고 밉상처럼 보일 정도의 ‘잘난 척’은 아니기에 소소한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시나노 조지의 미스터리 해결 패턴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독자와 함께 사건을 조사한다기보다는 현장을 한번 스윽 훑어보곤 “진상이 보이는군. 이제부터 설명해주지.” 식이라서(물론 안 그런 작품도 있습니다) 뛰어난 천재의 ‘해법 쇼’를 즐기는 독자라면 그 패턴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탐정과 함께 사건을 풀어가고 싶은 독자라면 심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록된 8편은 각각 독특한 트릭과 장치들을 사용하는데, 하숙집이나 폐쇄된 병원, 기숙사 등 건물이나 공간을 이용한 트릭이 있는가 하면, 과학과 논리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도 있고, 정통 미스터리의 과정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우타노 쇼고의 다양한 매력을 한 방에 맛볼 수 있는 버라이어티한 단편집입니다.
묵직하고 복잡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겐 조금은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재치 있고 경쾌한 트릭을 무겁지 않은 문장 속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우타노 쇼고만의 미덕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라면, 또 그런 류의 작품을 찾고 있던 독자라면 짧은 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외모에서도 능력에서도 시크한 천재의 기운을 발산하는 괴짜탐정 시나노 조지는 ‘집 시리즈’ 이후 그를 오랜만에 만난 독자들 뿐 아니라 저처럼 처음 만난 독자들에게도 무척 흥미롭고 기억에 남을 캐릭터가 돼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