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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꿈의 직장과 안정된 생활, 어쩐지 운명의 상대일 것 같은 남자와의 첫 데이트까지, 달콤했던 가브리엘라의 주말은 그녀의 딸을 유괴한 범인으로부터 거액의 몸값은 물론 비밀 문건 ‘옥토버리스트’를 찾아내라는 협박을 받는 순간 산산조각 난다. 잘 생기고 친절한 데다 부자이기까지 한 대니얼은 이제 막 만났을 뿐인 가브리엘라를 도와 유괴범과 협상을 벌이려 한다. 가브리엘라의 딸을 납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보내는 조셉, 뉴욕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의문의 남자, 그리고 결코 협조적이지 않은 경찰들. 소설은 그들의 사흘 동안의 동선을 역순으로 추적한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이야기라 줄거리 정리가 조심스러워서 인터넷 서점의 출판사 책 소개글을 요약했습니다)

이야기를 거꾸로 전개한다는 것, 그것도 반전이 거듭되는 스릴러를 마지막 챕터부터 첫 챕터의 순서로 집필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면 반전의 맛을 마지막에 배치된 첫 챕터에서 느끼라고? 그 역시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제프리 디버라 하더라도...
일단 이런 의구심과 미심쩍은 시선으로 첫 페이지를 열자 ‘챕터 36’부터 ‘챕터 1’을 향해 그려진 목차가 눈에 띄었습니다. 진짜구나, 하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첫 챕터를 마치자마자 또다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게, 마지막 장면이라고? 긴장감도 반전의 향기도 느낄 수 없는 내용인데, 이걸 나중에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렇게 시작을 했을까? 새삼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에 들어있던 번역자의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옥토버리스트’를 펼쳐든 독자라면 한동안 고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실 무척이나 당혹스러웠습니다. 한 챕터를 마칠 때마다 그 앞 챕터의 첫 문장을 다시 확인하곤 했습니다. 아, 이렇게 연결되는군,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중반쯤부터 앞에 깔아놓은 설정들이 하나씩 하나씩 정체를 드러내면서 책읽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합니다. 2/3쯤 되면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되고, 마지막 몇 챕터에서는 빙긋 웃음까지 나올 정도로 제프리 디버의 트릭에 반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시원한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됩니다.
사건과 인물의 실체를 시간의 역순에 따라 배열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서술에 비해 몇 배의 노력과 치밀한 구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 모든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지레 걱정했던 독자들은 그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짜릿함과 함께 제프리 디버의 진면목을 맛보게 됩니다.
“작업실에 있는 모든 포스트잇을 이용하여 스토리를 완성했다.”는 제프리 디버의 고백을 보고 사방의 벽이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졌을 작업실이 연상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포스트잇을 떼었다, 붙였다 반복했을까? 휴지통을 꽉꽉 채울 만큼 버려진 포스트잇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몇 번씩이나 이리저리 옮겨 붙여지던 포스트잇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완벽하게 시간의 역순에 따라 배열됐음을 발견했을 때의 제프리 디버의 쾌감은 어땠을까? 등등 ‘설계자’ 제프리 디버의 고뇌로 가득 찬 모습까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번역자는 두 번째 읽을 때는 뒤부터, 즉 챕터 1부터 읽어볼 것을 권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옥토버 리스트’는 몇 번을 읽더라도 챕터 36부터 거꾸로 읽어야 깊은 맛과 지적 쾌감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웬만해선 출판사의 소개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까칠한 독자지만, 이번만큼은 눈에 띄는 두 줄의 홍보 카피에 100%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을 믿지 마라, 정보를 속단하지 마라, 인물에 공감하지 마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이 뒤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