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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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는 소문은 숱하게 들었지만 워낙 방대한 양(첫 출간 때 11권까지 나왔습니다)인데다 신화적인 요소를 강하게 풍기는 것 같아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사전 서평단에 뽑혀 10여년 만에 나온 개정판 가운데 첫 편의 가제본을 읽게 됐습니다.

첫 출간 때 두 권으로 분권됐던 1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를 한 권으로 묶었는데, 거의 한 호흡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주하면서 왜 십이국기가 화제의 작품이 되었는지, 애니메이션으로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수많은 오타쿠를 양산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16세 여고생 나카지마 요코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기이한 모습의 게이키에 의해 허해(虛海)를 건너는 식()을 통해 교국(巧國)이라는 낯선 세상으로 옮겨집니다. 흉사를 몰고 온 해객(海客)으로 낙인 찍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요코는 겨우 감금을 풀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자신을 데리고 온 게이키는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고, 가진 것이라곤 그가 건네준 검 한 자루 뿐인 신세가 됩니다. 이후 밤마다 끔찍한 요마들의 습격을 받으며 게이키 찾기에 나선 요코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곳이 십이국 중 한 나라인 교국이라는 사실, 그리고 다시는 자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쥐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 라쿠슌을 만나면서 요코의 여정은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해객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안국(雁國)으로 함께 길을 가던 중 라쿠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왜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은 요코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안국의 왕 연을 만나 다시 한 번 자신의 운명을 확인한 요코는 오랜 고민 끝에 내전과 혼란으로 가득 찬 십이국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차원의 세상이 등장하는 장면은 물론 요코가 요마(妖魔), 선인(仙人), 환영(幻影), 반인반수(半人半獸) 등과 마주치는 장면들을 보곤 조금은 당혹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판타지 설정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과 어색함은 요코가 점차 십이국이라는 새 세상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감에 따라 금세 잊을 수 있었고, 이내 과연 요코는 집과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든가, ‘요코가 십이국의 세계로 끌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요코를 십이국으로 데려온 게이키와 요마들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서사의 첫 편이다 보니 십이국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 쏟아집니다. 십이국의 탄생 신화에서부터 하늘과 각국의 왕, 그리고 왕을 보필하는 기린(麒麟), 또 이형의 짐승에서부터 빙의가 가능한 요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개되고, 현재 십이국의 각각의 상황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뒤따릅니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 세세한 정보까지 머릿속에 입력하다 보면 한없이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노 후유미가 이 복잡하고 방대한 설정들을 구상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공 들였을지 상상해보면 저절로 경외감이 들기도 합니다.

 

사건의 전개만 따지면 의외로 줄거리는 심플합니다. 십이국이라는 다른 세상으로 오게 된 요코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그 출발점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공황에 가까운 심리적 갈등을 통해 요코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작품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어서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실감을 높여줍니다. ‘저쪽 세상의 가족과 친구들 속에서 무력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반추와 회한, 연이은 배신과 속임수를 통해 얻은 사람은 결국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서글픈 깨달음,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십이국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 등 낯선 세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요코의 모습은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물 판타지가 아니라 좀더 진지한 메시지가 담긴 의미 있는 서사임을 보여주는 대목들입니다.

 

이것으로 요코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라는 본편의 마지막 문장을 본 순간 두 번째 이야기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렜습니다. 인터넷서점과 블로그에서 여러 서평과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지만, 후속작들을 직접 읽어보기 전까진 십이국기에 대한 그 어떤 사소하고 작은 정보도 외면하기로 했습니다. 오노 후유미의 거대한 서사를 만끽하는 재미를 스포일러로 망치고 싶진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십이국기와 관련하여 유일하게 검색해본 자료가 하나 있는데, 작품 속 묘사만으로는 잘 연상되지 않아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이리저리 검색하다 찾아낸 십이국의 지도입니다. (정식 출간본에는 이 지도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가제본에는 없었습니다) 꽃잎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지만 어딘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십이국의 지도를 끝으로 서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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