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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7
안치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0월
평점 :
다 읽은 뒤 작가 안치우의 이력이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2010년에 출간된 ‘ZA 문학공모전 수상작품집’에 실린 ‘도도 사피엔스’ 한 편이 전부였습니다. 단편 한 편이 경력의 전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치우는 ‘재림’에서 뛰어난 필력과 캐릭터 플레이를 선보였는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또 한 명의 우리 장르물 작가를 만났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변호사지만 오래 전부터 키워온 탐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민간조사원으로 나선 독고잉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탐정의 길을 걷게 된 미학 전공 시간강사 강승주, 180cm의 키에 가공할 무력과 뛰어난 추리력과 해커의 능력까지 겸비한 홍일점 권민, 그리고 전직 경찰로 거미줄 같은 정보원을 확보한 사무장 등 네 명의 괴짜가 ‘재림’의 주인공들입니다.
독고잉걸(독 소장)과 강승주가 사건 현장에서조차 한시도 수다를 그칠 줄 모르는, 그것도 수시로 샛길로 빠져 사건과는 무관한 엉뚱한 논쟁을 펼치는 만담 캐릭터인 반면, 권민은 여자이면서도 무채색처럼 음산하고 낮은 목소리를 지닌 데다 그마저도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묵직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마치 물과 기름을 섞어놓은 것처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독 소장의 멤버들은 사립탐정이 허용되지 않는 한국에서 ‘민간조사원’이라는 애매한 타이틀밖에 지닐 수 없었지만 그 열정만큼은 ‘CSI’나 ‘크리미널 마인드’의 멤버들 못잖게 뜨겁습니다.

표제작인 ‘재림’과 프리퀄인 ‘만남 그리고 시작’ 등 두 편의 중편으로 구성됐는데, ‘재림’이 종교의 광기가 불러온 끔찍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는 반면, ‘만남 그리고 시작’은 영국에서 벌어진 여대생 실종사건 수사를 통해 독 소장과 강승주, 그리고 권민이 한 팀이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두 사건 모두 결정적인 키 플레이어는 하드보일드 여탐정 권민의 몫이었지만, 엉뚱한 발상과 예리한 관찰력을 자랑하는 독 소장과 강승주의 콤비 플레이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두 콤비를 지켜보고 있으면 미드 ‘NCIS’의 바람둥이 수다꾼 토니 디노조가 생각나는데,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 잔혹한 이야기에 만담 스타일 유머를 가미함으로써 책읽기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다만,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동원한 점(가령, ‘재림’에서 기독교 내부의 논쟁과 교리를 여러 장에 걸쳐 강의하듯 서술한 것)은 눈에 거슬렸고,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각인시키기 위해 동원된 약간은 썰렁하거나 작위적인 에피소드들은 동어반복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가끔씩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현학적인 문장들이 눈에 띄곤 했는데, 작가의 필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균형감을 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이 작품이 지닌 장점과 미덕에 비하면 사소한 아쉬움에 불과할 뿐입니다. 매력적인 시리즈의 첫 편을 본 듯한 흐뭇함 때문에 이 이질적인 멤버들의 좌충우돌 해프닝과 환상적인 팀워크가 단발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까지 갖게 됐습니다. 재차 언급하지만, 다음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새로운 우리 장르물 작가를 만나게 돼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