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순간 나는 죽었어.”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당연히 애틋하고 마음 아픈 청춘 로맨스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열여섯의 나이로 죽었어.”라는 문장이 눈에 훅 들어왔고, 얼마 후 남자친구 제이컵으로부터 “난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은 주인공 브리가 ‘정말로’ 심장이 부서져 죽는 장면까지 나오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브리가 저승의 피자집 ‘천국의 한 조각’에서 만난 패트릭의 도움을 받아 유령의 몸으로 이승으로 내려온 이후 벌어지는 뜻밖의 이야기 전개는 ‘도대체 이건 무슨 장르?’라는 호기심과 의아함을 자아냈습니다.

‘상심증후군’은 두 가지 테마를 축으로 펼쳐집니다. 16살 청춘들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첫사랑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비밀과 거짓말, 복수와 화해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됩니다.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판타지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사랑과 영혼’의 10대 버전일 것이라는 예단은 금물입니다. 유령의 몸으로 이승에 내려온 브리의 눈에 비친 사랑하던 사람들의 배신, 저승의 로맨스를 이룰 것만 같던 브리와 패트릭 사이의 첨예한 갈등, 어둡고 악마적인 샌프란시스코의 야경 속에 숨은 끔찍한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 ‘죽은 자가 영원히 죽게 되는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브리와 패트릭의 사투, 그리고 그동안 무작정 브리를 돕던 패트릭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 등에서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거듭 놀라며 예측불허의 전개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The Catastrophic History of You and Me’로, ‘대재앙의, 파멸의, 비극적인, 파국적인’이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면 제목이 지닌 중의적인 의미를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달달한 표지에서 예감할 수 있듯 이야기는 나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종착점에 도착하기 위해 브리와 패트릭이 겪은 수많은 굴곡들은 브리의 심장이 두 동강 난 일부터 시작하여 말 그대로 재앙, 파멸, 비극, 파국으로 가득 차 있는 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판타지 장르 혹은 사후 세계 이야기에 지독한 거부감을 품은 독자만 아니라면 누구나 브리와 패트릭의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금 이별을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치료제 같은 소설”이라는 번역자의 후기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구한 날 피와 살이 튀는 장르물에 파묻혀 있다가 운 좋게 읽게 된 ‘상심증후군’은 초콜릿 한 조각을 혀에 올려놓은 것처럼 달달한 간식으로는 최상의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