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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슈투더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7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지음, 박원영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사건이 일어난 게르첸슈타인은 스위스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입니다. 한 외판원이 숲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됐고 용의자는 금세 체포됩니다. 용의자는 숱한 전과를 지닌 청년으로 돈 때문에 애인의 아버지를 죽인 혐의를 받습니다. 하지만 슈투더는 사건 자체에 의문을 품고 피살자와 용의자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합니다.
수사를 거듭할수록 슈튜더는 외판원의 죽음이 보험금을 노린 자살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좁은 공동체 사회의 폐쇄성은 도시에서 온 형사를 무시하거나 비아냥댔고, 외판원의 가족조차 수사에 비협조적인 탓에 슈투더는 곤란한 상황에 빠집니다. 하지만 나이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집요하게 단서들을 찾아가던 슈투더는 결정적인 물증과 진술을 통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갑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보기 드문 스위스 작가의, 그것도 1930년대에 출간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지만 타고난 반골 기질 때문에 밑바닥 계급으로 좌천된 뒤 ‘일개 형사’로서 사소한 사건들을 맡고 있는 슈투더가 주인공입니다. 콧수염을 기른 거구에 싸구려 시가를 즐기고, 적잖은 나이지만 여전히 의욕은 넘치는데다 전화와 급행우편 외엔 딱히 소통의 도구도 없던 1930년대의 형사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입니다.
‘형사 슈투더’의 가장 큰 특징은 사건이 벌어진 공간이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폐쇄적인 공동체에 침입한 외부인은 환영받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살인사건처럼 폐쇄성을 더욱 옥죄는 요소가 등장하고, 그것을 수사하기 위해 외부인이 개입한 경우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본문 속의 표현처럼 “도시의 살인사건 10건보다 시골의 살인사건 1건이 더 어려운데, 엉겅퀴처럼 엉긴 채 무엇이든 숨기고, 결국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무슨 짓을 저지르던 자신과 상관없으면 모른 체하기 일쑤인 주민들, 진상 따윈 고민하고 싶지 않은 예심판사, 시골마을의 하잘 것 없는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는 유지들, 그리고 노래와 연설과 뉴스를 통해 주민들을 지배하는 ‘스피커’ 등 사건이 발생한 게르첸슈타인은 형사 슈투더에게는 최악의 공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슈투더는 집요하리만치 탐문에 탐문을 이어가고, 얼렁뚱땅 수사를 접으려는 수많은 방해꾼들을 극복해나갑니다.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전도유망한 젊은 형사보다는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반골 기질의 노형사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귀차니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예심판사를 엿 먹여 수사를 재개하고, 보이지 않는 손처럼 마을을 지배하는 유지들을 어렵지 않게 코너까지 몰아붙입니다.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적절히 거리를 둔 밀고 당기기 식의 노회한 수사를 벌입니다. 이런 수사 덕분에 슈투더는 속도감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올바른 방향만은 놓치지 않습니다. 스위스에서 모두 다섯 권이 출간됐다는 ‘슈투더 시리즈’는 아마 이런 미덕을 기반으로 당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을 한 가지만 꼽자면 ‘돌직구 스타일의 지나친 정직함’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전개’라고 할 수 있는데, 연이은 탐문과 단서의 발견, 누군가의 제보에 힘입은 비밀의 폭로 등 전형적인 공식에 입각한 전개 때문에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반전에 대한 기대감 역시 반감된 게 사실입니다. 사건이든 캐릭터든 구성이든 하나쯤은 특이하거나 뚜렷한 개성이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는 요즘의 장르물 경향으로 볼 때 슈투더의 정직함이나 모범생 같은 캐릭터는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입니다.
독일어권 미스터리 문학의 선구자이며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고, 최고의 독일어권 미스터리 작가상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을 보면 프리드리히 글라우저의 ‘슈투더 시리즈’가 분명 권위 있고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후 그의 시리즈가 출간된다면 관심 있게 지켜보겠지만, 다음에는 첫 편의 정직함을 극복한, 조금은 더 쫄깃쫄깃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