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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들의 성야 ㅣ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맥주의 늪에 빠져 흐느적대던 안락탐정 닷쿠와 다카치가 현장탐정으로 변신하여 맹활약하는 모습을 그린 ‘닷쿠&다카치 시리즈’ 3편입니다. ‘어린 양들의 성야’는 꼬일대로 꼬인 구성과 사방에 묻힌 지뢰들, 그리고 반복되는 반전들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작품인데, 덕분에 정교한 논리적 구성과 롤러코스터 식 전개를 맛깔나게 믹스하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특별한 재능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헨미 유스케, 일명 보안 선배는 닷쿠와 다카치에게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포장선물을 건네며 이 선물의 주인을 찾아 전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1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닷쿠와 다카치와 보안 선배 앞에서 추락사한 가나에가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그동안 보안 선배가 보관해왔던 것입니다.
선물 주인을 찾기 위해 가나에의 유족, 가나에가 죽기 전 참석했던 파티의 주최자, 가나에의 약혼자와 전 남친 등 관련자들을 만나면서 닷쿠와 다카치는 당시 자살로 결론 났던 가나에의 죽음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음을 눈치 챕니다. 특히 다카치는 가나에의 아버지를 만난 후로 갑자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의 죽음의 동기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닷쿠와 다카치는 가나에가 추락사한 건물의 관리인을 통해 5년 전 규사쿠라는 소년이 가나에와 똑같은 방식으로, 즉 포장선물을 지닌 채 추락사했음을 알게 됩니다. 다카치는 관리인의 진술 속에서 가나에와 규사쿠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공통점은 다카치의 과거와도 맥이 닿아있는 비극적인 사연이라는 점이 밝혀집니다.
‘어린 양들의 성야’에서 두드러진 점을 몇 가지 꼽아보면, 이전 작품들에 비해 ‘맥주’의 위상이 미미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의 말석으로 쫓겨났고, 닷쿠와 다카치가 안락탐정에서 현장탐정으로 변신하면서 이야기가 사뭇 무거워졌으며, 두 사람 모두 대학 초년생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본격적인 탐정 캐릭터 플레이를 선보인다는 점입니다.
맥주에 취한 두 사람이 엉뚱한 상상과 가설을 통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갔던 전작들과 달리 맥주는 그때그때 필요한 경우에만 등장하는 소품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만큼 사건에 임하는 닷쿠와 다카치의 자세가 진지해졌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다카치가 최전방에 나서서 이야기를 이끄는데, 덕분에 지금껏 감춰졌던 다카치의 아픈 과거가 공개되면서 막판에 밝혀진 미스터리의 진상과 함께 이야기를 꽤 묵직하게 만듭니다.
이런 변화들은 한편으론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틀을 갖춤으로써 앞으로의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준 점은 반가웠지만, ‘닷쿠&다카치 시리즈’의 최대 매력 중 하나인 청춘과 성장, 엉뚱함과 의외성이 사라지고 갑자기 철이 확 든 어른들의 미스터리로 ‘노화한’ 점은 읽는 내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거의 원탑 주인공처럼 맹활약한 다카치는 동료인 닷쿠와 보안 선배는 물론 독자들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로 몇 수를 내다보는 추리를 여러 차례 선보이는데, 그 도가 지나친 나머지 ‘수십 년 경력의 명탐정’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황당하고 엉뚱한 가설에서 출발하여 차츰 진상에 다가가던 풋풋한 아마추어의 모습들이 그리워질 정도였습니다.
조금 긴 사족으로 세 가지만 덧붙이자면, 우선 저는 부산영화제에 와서 영화를 기다리며 띄엄띄엄 읽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반드시 한 호흡에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쉴 새 없이, 심지어 다 끝났다고 생각된 마지막 페이지에서까지 터지는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 반전의 묘미는 한 번에 읽지 않으면 절대 제 맛을 만끽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출판사에 드리는 말씀으로, 후반부에 등장하는 규사쿠의 어머니 ‘와미’가 여러 차례 ‘미와’로 오역되곤 했는데, 이 점은 다음 인쇄 때 꼭 수정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요즘의 평균보다는 훨씬 적지만) 몇 군데 오타도 함께 수정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에와 규사쿠와 다카치의 ‘공통점’에 대해 줄거리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스포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일부 서평에 무방비하게 노출돼있는 게 사실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가급적 사전 정보 없이 이 작품과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