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 20세기를 뒤흔든 모델 살인사건과 언론의 히스테리
해럴드 셰터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20세기를 뒤흔든 모델 살인사건과 언론의 히스테리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은 1930년대 뉴욕 빅맨플레이스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살인사건(특히 미치광이 예술가가 범인인 3중 살인사건을 중심으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자 당시 선정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미국의 타블로이드 판 신문들이 사건들을 어떻게 히스테릭하게다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살인사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피살자들이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들이라는 점,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양극화가 격해진 뉴욕의 빅맨플레이스에서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타블로이드들은 경쟁적으로 성()과 관련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피살자들의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사생활 찾기에 혈안이 됩니다. 적절한 사진과 에피소드를 구할 수만 있다면 거액도 마다하지 않을뿐더러 정 없으면 애매한 표현들을 동원하여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모범생처럼 진지했던 그녀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에서 섹시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집 안에 배달원이나 일꾼들이 있을 때도 네글리제를 입고 돌아다니길 좋아했던 빨간 머리 여자가 되었다.” (p57)

 

사건의 명칭을 어떻게 선정적으로 지어야 독자들의 시선을 끌까, 범인에게 어떤 자극적인 별명을 지어줘야 한 부라도 더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가 하면 연이어 살인이 벌어진 특정 장소에 대해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 급급합니다. 그 결과의 산물들이란 살해당한 모델의 미스터리’, ‘부활절 대학살’, ‘모델과 엄마, 섹스광에게 살해되다’, ‘술 취한 남자, 여성을 썰어 죽이다’, ‘망치 폭탄 맞은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등입니다.

더 이상 써먹을 내용이 없으면 그때부턴 아예 소설을 쓰거나 심지어 점성술사의 진술을 인용하여 범인의 외모와 현재 위치까지 과감히 추정합니다. 어제 내보낸 보도 혹은 소설이 오류로 드러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좀더 치명적이고 선정적인 새 먹이 찾기에 나설 뿐입니다.

 

끔찍한 범인과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 희생자는 되도록 여자면 좋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과 대중들이 가진 비밀스럽고도 위험한 욕망에 호소하는 자극적인 행위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p20)

 

이런 경향은 1930년대 뉴욕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넷 덕분에 오늘날의 매체들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태도는 더 강화됐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나치게 독한 보도들을 너무 자주 접한 나머지 웬만큼 센 자극이 아니면 독자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해진 정도라고 할까요?

 

타블로이드로 대표되는 히스테릭한 언론 이야기와 함께 작가는 하드보일드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미국 범죄사에서 3위로 꼽은 미치광이 예술가 살인사건을 방대한 자료에 기초하여 상세히 정리해놓았습니다. 사건 발생부터 재판 종결까지, 또 수감된 이후 범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보도된 기사 내용은 물론 수사일지와 관련자 인터뷰 등을 참조하여 거의 백서에 가까운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논픽션 작가답게 범인의 모든 것 - 유년기부터의 성장과정,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성돼온 과정, 여성에 대한 시각, 실체를 알 수 없는 정신적 장애 등 - 을 집요할 정도로 조사하여 끔찍한 살인마의 일대기 한 편을 완성시켰습니다.

 

얼마 전 같은 장르에 속하는 비독 소사이어티를 읽었습니다. 영구 미제 사건을 다루는 특별한 엘리트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비독 소사이어티가 픽션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좀더 강조했다면, 이 작품은 기록문학과 논픽션의 미덕을 살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좀 딱딱하기도 한데다 기록문학에 낯선 독자들에겐 재미면에서 부족할 수 있겠지만, 범죄 논픽션만의 매력을 맛보고 싶다면 괜찮은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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