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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단편집 ‘코’, 장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침저어’ 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이 보여준 소네 케이스케가 트릭의 묘미, 미래사회의 비극, 식인의 공포를 다룬 세 편의 중단편을 통해 독자를 서늘하고 아찔한 세계로 몰아넣는, 짧지만 임팩트는 엄청 강한 작품입니다.
① 열대야
야쿠자에 의해 감금된 채 살인과 강간의 위협을 받는 ‘나’와 동행들, 인적 없는 야간도로에서 사람을 치곤 그의 돈을 훔치려는 간호사, 커터칼로 여자들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마 타마짱 등 상황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고 인물들은 하나같이 끈적끈적한 위기 속에 놓여있습니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다양한 트릭이 숨어있는 잘 짜인 단편입니다.
② 결국에...
2030년대 후반, 동중국해에서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일본은 고령화 사회가 극에 달하자 고령자를 전쟁터로 내보내는 정책을 강행합니다. 이로 인해 경로(敬老)주의 과격단체 ‘연합은군’과 反노인세력 ‘청’은 내전에 가까운 세대 간 전쟁을 벌입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군국주의에 대한 냉소와 암울한 고령화 사회에 대한 경고 등 극단적인 현실감을 지닌 작품입니다. 특히 마지막 몇 줄의 반전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충격을 전해줍니다.
③ 마지막 변명
단편집 ‘코’의 공포가 맛보기 정도였다면, 단편과 중편의 중간쯤 되는 분량의 ‘마지막 변명’은 소네 케이스케 식 공포와 호러의 메인 코스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소생자(이를테면 좀비)의 식인’을 소재로 삼았지만, 단순히 말초적인 수준의 공포를 넘어 인류와 사회의 파멸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사실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그래선지 막판에 주인공이 내뱉는 마지막 변명에선 공포와 서글픔을 함께 맛보게 되는 아이러니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전작들을 통해 그의 팬이 됐기에 이 작품에 나름 큰 기대를 가졌는데, 그 기대는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충족됐습니다. 여러 가지 트릭이 등장하는 ‘열대야’는 짧고 스피디한 단편의 전형적인 매력이 물씬 풍긴 반면, ‘결국에...’와 ‘마지막 변명’은 암울한 미래의 불안감과 극단적인 공포심은 물론 소네 케이스케만의 상상력과 필력이 압권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열대야’가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자로서의 능력을 재차 보여줬다면, ‘결국에...’와 ‘마지막 변명’은 소네 케이스케가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까지 한꺼번에 휩쓸었던 작가란 점을 재차 상기시켜줬습니다.
단순히 설정의 힘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소네 케이스케는 개연성 있는 줄거리와 쉴 새 없이 전환되는 국면들, 그리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하고 사실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남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현실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명백한 허구지만 동시에 명백한 현실처럼 피부에 와 닿는 공포심이야말로 소네 케이스케의 트레이드마크라는 생각입니다.
스포일러에 가까운 반전과 트릭이 온 사방에 산재해있다 보니 내용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할 수 없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극단적인 새로움’을 원하는 독자라면 별 다섯 개도 부족할 정도의 재미와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