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의 10% 이상을 수로가 차지하는 물의 도시 야나쿠라에 기이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사람들이 얼마 후 거짓말처럼 다시 돌아왔는데, 그들은 사라진 기간 중의 기억이 전혀 없으며 깊은 잠을 잔 듯한 느낌뿐이라고 진술합니다. 전직 교수 교이치로는 수로가 집단실종에 관련 있을 거라 믿으며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기자인 다카야스는 당사자와 가족들을 인터뷰하는 등 취재에 열을 올리지만 주로 노년층인 당사자들은 별일 없이 돌아왔으니 소동 같은 건 원하지 않는다고 답할 뿐입니다. 교이치로의 딸이자 교토에서 요정을 운영하는 아이코, 교이치로의 제자이자 약간 괴짜 티가 나는 음악 프로듀서 쓰카자키 다몬 등이 합세하면서 야나쿠라의 실종사건의 진실을 캐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첫 페이지를 넘기지만, 매번 얼마 못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 시점에선가 저도 모르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을 넘어서고 만다는 점, 또 꿈이란 걸 알면서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듯한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는 점입니다.

이야기 속 공간에 친숙해진 나머지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어느 작가의 작품이든 푹 빠져 읽다 보면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온다 리쿠의 경우에는 그 도가 좀 심한 편입니다. ‘몽위에서는 대규모 패닉현상과 실종사건이 벌어진 나라(奈良) 한복판에 던져진 느낌이었고, ‘Q&A’에서는 대참사가 벌어진 대형마트 주변에서 직접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달의 뒷면은 독자로 하여금 거미줄 같이 늘어선 수로 속 도시 야나쿠라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살아온 것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말하자면 그녀의 몽환적인 묘사들에 홀려 어느 새 딴 세상, 딴 공간으로 점프해버린다고 할까요?

 

달의 뒷면은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징이나 비유가 더 복잡하고 다채롭게 설정돼서 쉽고 빠른 책읽기가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물론 문장은 쉽고 표현은 적확해서 금세 페이지가 넘어가긴 하지만, 후루룩 읽어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찬찬히 되읽은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수로에 인접한 주택들이나 주변 풍광은 물론 소품처럼 등장하는 책, 영화, 게임, 음식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어서 무심코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인물들의 언행도 마찬가지인데,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실종사건을 대하는 네 명의 주인공이 주고받는 대화 속엔 모종의 단서처럼 읽히는 대목들이 꽤 많아서 몇 번이고 되읽게 되곤 합니다.

 

존재론을 비롯하여 다소 철학적인 뉘앙스까지 풍기는 주제 의식 역시 난이도가 꽤 높습니다. 단순히 야나쿠라의 수로에 얽힌 괴담이라든가 갓파를 소재로 한 기이한 이야기 정도라면 깊게 고민할 일이 없겠지만, 온다 리쿠는 수로 + 수로 안에 사는 뭔가’ + 실종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괴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한 담론을 독자에게 던지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대략 채 절반 정도도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은데, 사실 이런 주제와 담론은 온다 리쿠의 고유한 개성을 빛나게 만들기도 있지만, 동시에 극단적인 낯섦과 혼란스러움의 원인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온다 리쿠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그녀의 팬이면서도 작품에 따라 호불호를 따지게 되는 특이한 현상 역시 바로 이런 몽환적이고 난해하고 철학적인 주제와 담론 때문입니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잣대를 갖고 읽는 것은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을 만끽하기엔 적절치 않은 방법입니다. 특히 호러와 판타지를 넘어 SF적인 요소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달의 뒷면은 억지로 이해하려기보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달의 뒷면을 느긋하게 유람하겠다, 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의 책읽기가 더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온다 리쿠도 은근슬쩍 독자들이 이런 태도를 갖길 원한 것 같은데, (착각일 수도 있는 억측에 불과하지만) 실종됐다가 돌아온 한 여인의 말에서 온다 리쿠의 바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 작품의 제목인 달의 뒷면은 온다 리쿠의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달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실제로는 앞면일 뿐이며, 그렇기에 그 뒷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는 모르는 채 살아간다. 뒷면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테마는 몽위‘Q&A’외에도 온다 리쿠의 적잖은 작품에서 언급되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