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창조의 시간 밀리언셀러 클럽 135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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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제이컵 자블런, 일명 스피너가 피살된 채 발견됩니다. 그는 죽기 전 매튜 스커더를 찾아와 봉인된 봉투를 맡기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볼 것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봉투에는 스피너가 모은 세 사람에 대한 협박용 자료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굳이 죽은 스피너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지만 매튜는 살인이 벌어진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곤 스피너의 친구 겸 협박범으로 위장한 뒤 세 사람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미끼로 살인범을 끌어들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예상대로 그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매튜는 세 사람 중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서 매튜는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드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요즘 장르물들에 비해 굉장히 짧은 분량인 240여 페이지에 불과한데, 그만큼 사족 없이 알찬 미스터리가 담겨 있습니다.

 

스피너가 세 사람을 협박했던 것은 명백히 불법적인 일이지만, 그가 죽기 전에 알아낸 세 사람의 과거는 훨씬 더 무겁고 악의적인 것들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인맥과 돈의 힘으로 피해간 사람, 치명적인 과거를 감춘 채 버젓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람, 죄악에 가까운 추잡한 짓을 벌이고도 권력의 핵심부에 앉아있는 사람 등 어떤 형태로든 법의 응징을 받게 만들고 싶은 자들뿐입니다.

 

스피너는 탐정인 매튜가 하찮은 잡범인 자신을 위해 복수해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죽을 경우 살인자를 못 본 척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매튜는 스피너의 친구이자 똑똑한 협박범으로 세 사람 앞에 나타납니다. 매튜가 대담하게 연락처와 거처까지 밝힌 채 자신을 미끼삼아 살인범을 유인하는 설정 덕분에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협박범으로 가장한 매튜의 거침없는 언사도 맛깔났고, 몇 차례 반복되는 화려하고 터프한 액션도 나름 재미를 선사합니다. 물론 뭘 믿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위험을 자처하는 대목에선 어쩔 수 없이 픽션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곤 하지만, 그래도 저런 게 어딨어?”라는 과장된 허구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매튜가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는 장면인데, 독자의 눈에도 그렇게 확신할만한 근거나 증거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튜는 왠지 자신이 지목한 용의자 외엔 혐의 없음이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더구나 그런 확신을 몇 번씩 거듭 강조합니다.

이럴 경우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나 남은 분량으로 보나 뒤집어질 것이 분명해 보이더라도 독자가 매튜의 확신에 동조하고 공감해야 뒤에 나올 반전이 의미를 갖게 되는데 단지 추측만으로 쉽게 용의자를 지목하다 보니 매튜가 왜 이러지?”라는 의문만 들 뿐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후속편이자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어둠 속의 일격을 먼저 읽고 말았는데, ‘어둠 속의 일격이 매튜의 개인적인 고뇌와 불행한 삶에 좀더 초점을 맞췄다면, ‘살인과 창조의 시간은 선명하고 깔끔하게 사건 위주의 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매튜에 관한 이런저런 다양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두 편을 연이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읽지 못한 매튜 스커더 시리즈가 책장에 두 편 남아있는데, 아끼면서 천천히 읽을 건지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 읽어버린 후에 신간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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