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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2005~2009년에 발표된 단편들이 실린 미쓰다 신조의 첫 호러 단편집입니다. 표제작 ‘붉은 눈’을 비롯하여 8편이 실려 있고, 4편의 엽편(葉篇) 호러가 중간중간 삽입된 구성입니다. 그의 ‘작가 시리즈’보다는 ‘도조 겐야 시리즈’에 더 열광했던 터라 기대감이 무척 컸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 대비 만족감은 조금 떨어졌고 별점도 4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수록작 중 여러 편이 딱 떨어지는 엔딩이 아니라 괴담에 어울리는 오픈된 결말로 마무리된 점, 그래서 마지막 줄을 읽고 나서도 “아, 끝났군.”이라는 깔끔한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좀 찜찜한 구석이 남았던 점이 이런저런 아쉬움을 남긴 큰 이유였습니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호러물을 대하는 개인적인 태도와 취향의 탓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괴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학교’, ‘폐가’, ‘저택’ 등 건축물이나 공간을 공포심과 괴이감의 출발점으로 사용하는데, ‘붉은 눈’의 수록작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쪽으로 기운 채 다 쓰러져가는 폐가(붉은 눈), 5년 전의 화재의 잔재를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저택(괴기 사진작가), 벼랑 끝에 선 채 마치 거리를 내려다보듯 서있는 서양식 저택(내려다보는 집), 늪 앞에 출입구가 있어서 늪을 밟아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물(한밤중의 전화) 등 실제로 그 앞에 불빛 하나 없이 홀로 서있게 된다면 순식간에 온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미쓰다 신조 특유의 축축하고 음습한 묘사를 통해 더욱 소름 돋게 그려집니다.
그 외에도 꿈, 거울, 착시를 통해 목격하는 끔찍하거나 기이한 환상, 애너그램을 이용한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 꾸미기, 곧 죽을 자의 신상을 꿰뚫어보는 초능력 등 다채로운 소재들 덕분에 8편의 수록작 모두 뚜렷한 개성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말 무서운 괴담을 기대한 독자들, 특히 ‘작자미상’이나 ‘도조 겐야 시리즈’를 읽으면서 괜히 움찔했던 경험을 다시 한 번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읽는 순간 무섭거나 괴이한 느낌을 준다기보다는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웠을 때 슬며시 기억 속에 떠올라 괜히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말하자면 은밀한 후유증을 자아내는 괴담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그런 종류의 괴담이 더 파괴력이 강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미스터리와 결합된 호러물을 좋아하다 보니 수록작들 가운데 ‘수집된 괴담 들려주기’ 식의 이야기는 제겐 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민속학적인 배경을 이용하든 도시 괴담류의 현대적 배경을 이용하든 미쓰다 신조의 ‘글빨’은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감흥까지는 무리였지만 으스스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집중과 몰입을 즐긴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록으로 실린 평론가의 해설 가운데 “무시무시한 최상의 작품집”이라든지 “역대 공포소설집 중에서도 최상위”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지금껏 출간된 그리고 앞으로 출간될 미쓰다 신조의 작품으로 들어가는 통행증”이란 표현은 이 단편집의 미덕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문구라고 생각됩니다. 미쓰다 신조에게 익숙한 독자라면 몰라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붉은 눈’은 아주 괜찮은 텍스트가 돼줄 것 같습니다.
(호감도 순으로 뽑으면 ‘붉은 눈’, ‘죽음이 으뜸이다’, ‘맞거울의 지옥’입니다. 각각 첫 수록작과 마지막 수록작인 ‘붉은 눈’과 ‘죽음이 으뜸이다’는 두 눈의 홍채 색깔이 다른 여학생을 등장시킨 연작이라 흥미진진했고, ‘맞거울의 지옥’은 미쓰다 신조 특유의 호러+미스터리 조합이 깔끔하게 이뤄져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