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본의 아니게 최근 고전에 가까운 작품들을 자주 접하게 됐습니다. ‘이와 손톱역시 빌 밸린저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55년에 출간된 대표작입니다. 왜 하필 제목을 이와 손톱이라고 지었을까 궁금했는데, 본문 뒤에 실린 번역 후기를 보곤 ~!”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서평을 마무리한 후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일단 건너뛰겠습니다.

이와 손톱은 두 가지 이야기가 한 챕터씩 교차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검사 프랭클린 캐넌과 변호사 찰스 덴먼이 벌이는 법정 공방전이고, 또 하나는 주인공 루 마운틴이 벌이는 치밀한 복수극입니다.

 

마술사 루 마운틴은 곤경에 빠진 탤리 쇼를 구해준 뒤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됐고 이후 결혼을 거쳐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행복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한 통의 협박전화로 인해 그들의 행복은 균열을 맞이했고, 끝내 루는 소중한 탤리를 잃고 맙니다. 경찰의 사고사 단정에도 불구하고 루는 탤리가 지니고 있던 물건때문에 정확한 진상을 밝힐 수 없었고 결국 사적인 복수를 다짐합니다. 마술뿐 아니라 뛰어난 추리력까지 동원하여 성공을 코앞에 뒀던 루의 복수극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뒤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한편, 법정에서는 기이한 살인사건에 관한 재판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는 아이샴 레딕이라는 남자로 보이는데, 문제는 사건현장에 이와 손톱, 뼈와 혈흔 같은 애매한 흔적만 남아있었을 뿐 정작 시체도 없고, 목격자 역시 하나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검사는 현장 증거에 따르면 피고는 유죄라고 주장하는 반면, 변호사는 발견된 것이라곤 단지 정황 증거 뿐이므로 피고는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검사는 도무지 범행동기를 알 수 없어 기소를 확신하지 못했고, 변호사는 증언이 거듭될수록 의뢰인인 피고를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줄거리만 보면 두 이야기의 접점이 어디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지만, 평행선을 달리듯 나란히 전개되던 두 이야기는 후반부에 이르러 정교하게 합쳐집니다.

루 마운틴의 복수는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합니다. 복수 상대의 얼굴도 본 적 없고, 목소리조차 직접 들은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직 연상과 추리만으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내듯복수 상대를 찾아낸 것은 다소 무리수가 느껴졌지만, 마술 같은 트릭과 치밀한 사전 포석을 통해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완벽한 신의 한수로 복수극을 마무리하는 과정은 대단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법정 공방전의 경우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증인 심문과 반대 심문이 이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증인을 향해 전혀 다른 시각과 논조를 펼치며 배심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검사와 변호사의 치열한 두뇌 대결은 마치 법정 현장을 생중계 하듯 긴장감과 사실감이 넘칩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피고가 계속 피고인으로만 명명될 뿐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인데, 중반쯤 되면 어렵지 않게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지만 루 마운틴의 복수극이 어떻게 진행됐기에 이 법정 장면과 연결된 것인지, 또 작가가 설정한 트릭은 무엇이며 어떻게 풀릴 것인지는 그리 쉽게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The Tooth and the Nail’입니다. 번역 제목인 이와 손톱그대로입니다. 언뜻 보면 아이샴 레딕이 살해된 현장에서 발견된 이와 손톱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정관사 The를 뺀 ‘tooth and nail’맹렬하게, 필사적으로라는 뜻을 가진 숙어라는 점에서 작가 빌 밸린저가 중의적인 차원에서 정한 제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깊은 뜻까지 반영한 번역 제목을 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번역자의 후기를 통해서라도 그 뜻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스마트폰도, 유전자 감식도, CCTV도 없던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스토리지만, ‘이와 손톱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더 빛나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기발한 발상과 정교한 트릭, 두 갈래의 이야기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교차되는 구성미 등 고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못 읽은 빌 밸린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역시 이런 고전의 맛을 전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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