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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6
장은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8월
평점 :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튼실한 돼지 한 마리와 조금은 과장된 크기의 제목을 둘러싼 음산한 붉은 색조의 표지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공포물, 특히 영상으로 만들어진 공포물은 거의 보지 않는 편입니다. 솔직히 무섭고, 기억 속에 남아 수시로 떠오르는 일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영상보다 활자로 기록된 공포 이야기가 더 오랜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지만,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책으로 된 공포물에는 자꾸 관심이 가곤 합니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오랜만에 만난 다양한 한국 작가들의 단편들이라 더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표제작 ‘돼지가면 놀이’를 비롯해 모두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광기와 식인, 꿈과 환각, 육체를 지닌 귀신,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존재들, 시공간의 점프, 소시오패스, 구원(舊怨)과 복수 등 각각의 작품마다 독특한 설정과 기괴한 엔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돼지가면 놀이’(유재중), ‘숫자꿈’(김재은), ‘구토’(김유라)가 좋았는데, 세 작품 모두 뛰어난 비주얼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단편영화나 단막극으로 만들어지면 원작의 섬뜩한 느낌이 더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무섭다기보다는 안쓰럽고 애틋함까지 불러일으키는 여자 귀신(여관바리), 평범한 인물에게 닥친 끔찍하고 비현실적인 상황들(며느리의 관문, 파리지옥), 공포 분위기와 복수극을 잘 접목시킨 이야기(무당아들, 고양이를 찾습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신과 종교 혹은 환상에 관한 이야기(낚시터, 헤븐)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맛볼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다만, 소름이 돋을 정도의 공포감을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심심함과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공포물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 저마저도 두세 작품 외에는 ‘정말 무섭다’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읽을 때는 잘 몰랐던 기괴함이 뒤늦게 스멀스멀 기어올라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싶었던 작품도 있었지만, 짜릿한 공포를 즐기는 마니아들에게는 2% 정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단편집이라 좋았고, 저 같은 독자가 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공포물이라 더 좋았습니다. 이 작품이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의 여섯 번째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딱히 관심을 갖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눈여겨 본 몇몇 작가의 작품이 실린 여타 단편선도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