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도둑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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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앤드루 말로우는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을 칼로 공격하려던 로버트 올리버라는 남성을 맡지만, 그가 전혀 입을 열지 않는 탓에 왜 그림을 공격했는지, 그의 증상을 무엇이라 진단해야할 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올리버가 공격했던 그림은 질베르 토마의 작품 레다였는데,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와 스파르타 왕비 레다의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올리버는 그림을 공격한 것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한 일이고, 그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생각하시오라는 대답만 할 뿐입니다. 정신과 의사지만 미술에 조예가 깊은 말로우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올리버의 사건에 몰입합니다.

말로우는 올리버의 전처 케이트, 그의 새 연인 메리 버티슨을 만나면서 올리버의 특이한 과거를 알게 됩니다. 그는 광적인 미술가였고 프랑스 인상파의 영향을 깊게 받았으며, 뛰어난 재능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리는 데만 몰두해왔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676페이지의 <>자를 보는 순간, 중후한 고전 한 권을 끝낸 듯한 뿌듯함과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작가의 전작 히스토리언이 지적 미스터리라는 별칭을 얻은 바 있고, ‘백조도둑역시 예술 미스터리로 분류된 탓에 읽기 전부터 딱 떨어지는 장르물이 아니라 조금은 고통스러운(?) 책읽기가 필요한, 즉 예술과 예술가의 세계를 그린 묵직한 작품이란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는데,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을 때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1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과 미술에 관한 대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물은 사랑과 미술로 인해 행복과 불행을 겪는 것은 물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삶을 반복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는 때론 비극으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때론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지배하는 기본 정서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에 가깝습니다.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는 구성인데, 정신과 의사 말로우, 올리버의 전처 케이트, 그의 새 연인 메리가 번갈아 이야기를 이끌고, 1870년대 후반을 살았던 베아트리스와 올리비에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삽화처럼 등장합니다.

말로우의 챕터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향타 역할이라면, 1870년대의 편지는 수십 년의 나이를 건너 뛴 두 남녀, 그것도 근친에 가까운 금단의 사랑을 담고 있어서 호기심과 긴장감을 이끌어냅니다. 반면 케이트와 메리의 챕터는 주로 올리버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그림을 그렸으며 한 여인에 대한 그의 집착이 자신들이 남긴 상처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 작품에서 중후하고 묵직한 고전의 향기가 풍기는 것은 누가?’, ‘?’라는 장르물적인 호기심을 능가하는,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인간에 대한 고찰이 작품 전체를 면면히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인 화자인 말로우의 시선을 통해 여러 인물의 희로애락이 묘사되는데, ‘한 여인에 대한 집착과 그림에 대한 광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채 정신병원에 갇힌 올리버, 그를 사랑했지만 깊은 상처만 받곤 등을 돌렸던 케이트와 메리, 그리고 100여 년 전 편지를 통해 사랑과 미술에 대해 논했던 베아트리스와 올리비에 등 평탄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야했던 여러 인물들의 사랑, 욕망, 배신, 절망을 작가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문장을 통해 그려냅니다. 때론 차분함과 깊이가 실제 고전의 그것에 맞먹을 정도라서 지루함을 줄 때도 있지만, 그 진가는 대서사의 마지막에 이르러 발휘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고비를 넘겨야만 합니다.

 

곳곳에서 소개되는 프랑스 인상파에 대한 묘사는 이 작품의 보너스이자 왜 이 작품이 예술 미스터리로 분류되는지를 입증해주는 대목입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로 하여금 수시로 검색창을 열어 당대의 화가나 작품들을 직접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흥미롭게 설명됩니다. 특히 작품 속 주요 공간인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해안마을 에트르타와 그곳에서 그려진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의 걸작들에 대한 설명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장르물로서의 매력은 한 여인과 그림의 실체가 밝혀지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극대화되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 중반부까지의 고전적 서사를 견디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과 미스터리가 조합된 21세기 판 영국식 고전을 기대한다면, 또 너무 급하게 달리려 하지 말고 천천히 인물 하나, 문장 하나를 음미해가며 읽는다면 훨씬 더 만족스러운 책읽기와 함께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인상파 소설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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