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7
존 카첸바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부터 망상과 환청에 시달려온 페트럴 프랜시스는 23살이 된 1979년 이른 봄, 가족들에 의해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에 갇힙니다. 이름보다 별명이 통용되던 그곳에서 프랜시스는 ‘바닷새’로 불리게 되고, 교회에 불을 질러 사상자를 내고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입원한 ‘소방수’ 피터를 만납니다.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짧은 금발의 간호사가 참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합니다. 한편 훼손된 사체에서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발견한 여검사 루시 존스는 관료적인 원장 걸프틸리 박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체류하며 프랜시스와 피터를 조수로 삼아 환자 가운데 숨어있는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방대한 탐문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정신병자들로 가득 찬 병원에서의 생활은 세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 와중에 동일범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지만 걸프틸리 박사는 정신병자의 단순 자살 또는 병사로 단정지으며 루시의 수사를 방해합니다.
줄거리만 보면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스릴 넘치는 연쇄살인범과의 대결’인 듯 보이지만, 사실 다 읽고 난 뒤 마음에 남은 것은 한없는 암울함과 지독한 중압감입니다. “이 병원은 사방에 위험이 도사린 곳이며, 불화와 분노와 광기가 뒤섞여 항상 부글거리는 가마솥이었다.”는 묘사대로 존 카첸바크가 그린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의 낮과 밤은 끔찍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약에 취한 환자들의 눈에 비친 몽환적 분위기까지 잘 살아있어서 마치 실제로 그곳에 갇혀있는 듯한 불쾌함을 생생히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세 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불행과 비극을 테마로 설정돼있습니다. ‘바닷새’ 프랜시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그의 귓가를 점령한 ‘목소리들’이 쉴 새 없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평범한 삶을 구성하는 모든 사소한 것들’을 빼앗아갔으며, 결국에는 그를 정신병원이라는 곳까지 몰아세웠습니다.
‘소방수’ 피터는 원래 유능한 방화조사관이었지만, 조카를 성추행한 신부를 증오하여 그의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정신이상이 입증되면 정신병원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여검사 루시 존스는 대학 1학년 때 성폭행 당한 후 칼에 맞아 눈 위에서 턱에 이르는 길고 흉한 자상이 남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평범한 삶과 사랑을 잃은 채 성범죄를 전담하는 검사의 길을 걷게 됐는데, 젊은 날 겪은 끔찍한 사건이 자신을 성공한 여검사로 이끌었다고 자위해보지만, 그날의 악몽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 기구한 이력을 지닌 세 명의 주인공과 연쇄살인범이 배치된 만큼 수사는 ‘정상적으로’ 전개되지 못합니다. 더구나 연쇄살인범은 어디선가 이들을 지켜보며 끊임없이 공포심을 자극하고, 살인사건마저 자살이나 병사로 위장하려는 원장은 악의적인 탐욕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탓에 ‘바깥세상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시작한 수사는 벽에 부딪히고 결국 ‘미친 세상의 룰’에 맞춘, 즉 가장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용의자를 찾기에 이릅니다. 일부러 환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혼란을 야기하여 연쇄살인범의 이상행동을 유도하거나 주인공 스스로 미끼가 되고 함정을 파는 등 미친 세상에 어울리는 전략을 짜내기에 골몰합니다.
장소, 사건, 인물 모두 일그러지고 비틀린 설정으로 이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조합만이 자아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독특한 분위기’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데,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암울한 정서가 워낙 강한데다 주인공들의 불안정한 심리나 정신병원 환자들의 막장 같은 삶에 대한 묘사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다 보니 정작 사건 자체나 수사과정은 관심 밖으로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분량 상으로도 600여 페이지 가운데 사건과 수사에 할애된 것은 절반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번역자는 ‘인간의 심리를 한 올 한 올 파고들어가는 치밀한 관찰력’을 이 작품의 미덕 가운데 한가지로 꼽았는데, 분명 일리 있고 공감되는 이야기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이 ‘치밀한 관찰력’이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고전문학을 연상시키는 깊이 있는 문장과 다채롭고 화려한 비유는 존 카첸바크의 뛰어난 필력을 보여주는 명백한 근거지만 ‘느슨한 만연체’를 즐기지 않는 독자에게는 넘기 힘든 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존 카첸바크의 작품 가운데 중고로 구입한 ‘애널리스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분량도 비슷하고(646p), 꽤나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들 내용인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고 넘기 힘든 산이지만, 똑같은 이유로 읽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걸 보면 존 카첸바크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