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독 소사이어티 - 82명의 살인 사건 전문가
마이클 카프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비독 소사이어티는 장르가 참 모호한 작품입니다. 인터넷서점에서는 대체로 사회 분야(사회과학, 사회문화, 사회문제 등)로 구분해놓았는데, 실은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집이면서 동시에 미스터리 스릴러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기록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픽션에 못잖은 캐릭터와 참혹한 사건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미스터리보다 더 재미있게 짜여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필라델피아에서 출범한 비독 소사이어티는 미제 사건 전문 명탐정 드림팀입니다. 유능한 현장 경찰에서부터 FBI, 세관, 마약단속국 등 다양한 기관의 인재들이 모여 경찰로부터 요청 받은 미제 사건을 함께 수사하고 해결합니다. 비독 소사이어티라는 명칭은 1811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국립수사기관 쉬르테를 설립했으며 아르센 뤼펭, 셜록 홈스, 오귀스트 뒤팽 등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프랑수아 비독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는 악명 높은 살인자, 바람둥이, 사기꾼, 노상강도, 탈옥자였지만 결국엔 위대한 탐정이자 파리 최고의 경찰이 된 특이한 인물입니다. 경찰로서의 그의 가장 큰 미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친구였다는 점, 그리고 가족을 위해 빵을 훔친 사람에겐 관대했다는 점입니다.

 

비독 소사이어티는 그런 미덕을 이어받아 미제 사건의 살인자들을 추적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고 피해자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살인에 관한 한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활약은 짧게는 2년 전, 길게는 40여년이 지난 사건에까지 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은 관할 경찰에 넘기고 자신들은 무대 뒤의 자리에 만족했는데, 언론은 자원 봉사로 일하는 일류 탐정들’,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카우보이들이라 불렀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적어도 이 작품이 커버하고 있는 2009년까지 계속 됩니다.

 

비독 소사이어티는 82명의 회원으로 구성됐지만 이 작품은 모임을 주도한 3명의 명탐정과 그들이 해결한 10여 건의 사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화려한 현장 경력을 자랑하는 전직 FBI 수사관이자 모임의 창시자인 윌리엄 플라이셔, 명석하지만 오만하기까지 한 프로파일러 리처드 월터, 낭만적인 바람둥이에 직감과 본능에 의존하는 법의학 예술가 프랭크 벤더가 그들인데, 특히 이성적인 리처드와 감성적인 프랭크의 콤비 플레이는 비독 소사이어티의 백미입니다.

 

교도소에서 프로파일러의 이력을 쌓았고 현장 사진만으로도 범죄자의 성향을 정확하게 지목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리처드에 반해 프랭크는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남들은 갖지 못한 3의 눈덕분에 영매에 가까운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여 난제로 꼽히던 미제 사건을 거뜬히 해결합니다. 프랭크는 20년 전의 사진만으로도 현재 그 인물의 생김새를 유추할 수 있고, 피부 하나 없는 두개골만으로도 당시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런 극과 극을 달리는 성향 때문에 리처드와 프랭크는 내내 티격태격 으르렁대지만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면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이들이 다룬 사건은 하나같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범인은 어지간한 픽션 속의 연쇄살인범보다 더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디스트들이고, 희생자들의 끔찍한 최후는 충격적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묘사됐습니다. 특히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읽으면서 느끼는 체감 충격은 훨씬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 범죄조직의 두목, 자신의 가족이나 약혼자를 살해한 연쇄살인마, 소년소녀들을 성폭행하거나 살해한 신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희대의 사디스트들이 저지른 미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3명의 조촐한 점심 모임에서 출발하여 산 자의 동료이자 죽은 자의 영웅으로 진화한 비독 소사이어티와 그 멤버들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그런 조직의 탄생과 활동이 가능했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부러움까지 갖게 됩니다.

 

작품 후반부에 소개된 천재적인 프로파일러 리처드의 헬릭스 이론은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나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대목입니다. 헬릭스는 사디스트 유형을 단계적으로 나누고 각 단계의 특징을 설명한 그림이자 도표인데, 페티쉬나 관음증에서 시작된 범죄가 접촉도착증과 상대를 구속하려는 증상을 거쳐 신체의 일부 등을 기념품으로 수집하는 가학적 살인자의 단계를 지나 시간(屍姦), 흡혈, 식인이라는 사디스트의 최종적인 경지까지 진화하는 과정을 8단계로 나눈 후 실제 범죄 사례를 들어 자세히 묘사합니다. 새삼 그동안 읽은 픽션 속의 연쇄살인범들이 어느 단계쯤이었는지 떠오르기도 했고, 앞으로 만날 연쇄살인범들에 대해서도 나름 사전 지식을 갖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역자 후기에 보면 비독 소사이어티는 스릴러 소설의 쾌감,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인 미드의 흥미, 인간극장의 감동이 버무려진작품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한 가장 적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작품이 인터넷서점에서 사회 분야로 분류된 탓에 많은 장르물 독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쓴 소리를 한 가지만 하자면,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당연하다는 듯 오타를 남발하고 있다 보니 중반 정도까지 발견된 평균치 수준의 오타는 어떻게든 참아내고 읽었지만, 그 이후부터 점점 빈도도 높아지고 납득하기 어려운 오타까지 등장한 탓에 내용보다 오타에 더 신경이 쓰이면서 책읽기가 무척 불편해졌습니다. 별 다섯 개도 부족한 작품이지만 오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옥의 티였습니다. 수많은 띄어쓰기 오류는 지적하기도 무안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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