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신의 7일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사신 치바’가 여섯 편으로 구성된 연작단편인 반면, ‘사신의 7일’은 한 유명작가의 조사를 맡은 치바의 7일의 여정을 담은 장편입니다. 이 작품에도 치바의 캐릭터와 그의 미션에 대해 친절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굳이 전작을 읽지 않고도 치바의 모든 것을 무난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다양한 매력을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전작을 꼭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항상 비를 몰고 다니고,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는 대화로 상대를 당황케 만들며, 음악에 빠진 채 엉뚱한 블랙코미디를 구사하는 치바의 유쾌한 캐릭터는 여전합니다. 또한 자신이 맡은 대상을 7일 동안 조사한 후 생사를 결정하는 사신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 치바는 거의 대부분 ‘可’, 즉 죽음 쪽으로 결정하는 비정함을 보여줍니다.
이번에 치바가 조사를 맡은 인물은 야마노베라는 유명 작가입니다. 그런데 그와 그의 아내 미키는 1년 전 딸 나쓰미를 혼조 다카시라는 괴한에게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죄 선고를 받고 자유인이 된 혼조에게 사적인 복수를 준비 중입니다. 처음엔 아니겠지, 하다가 초반부에 치바의 조사대상이 야마노베라고 밝혀진 순간부터 ‘왜 하필...’이라는 안타까움과 ‘도대체 어떻게 끝나려나?’하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평소의 치바라면 아무리 딸을 잃은 슬픔을 겪은 야마노베라 하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정하게 죽음을 선고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혼조는 쉽게 말하면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는 사이코패스입니다. 10살 된 나쓰미를 살해하고, 완벽한 사전준비를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음으로써 야마노베 부부의 절망을 극한까지 몰아붙입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부부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이벤트’를 만들어 냅니다. 야마노베 부부는 복수를 위해 혼조에게 접근하지만 번번이 실패할 뿐 아니라 그가 쳐놓은 덫에 걸려 큰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 항상 치바가 동행합니다. 본의 아니게 두 부부를 도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치바는 감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방관자처럼 행동하거나 극한의 슬픔에 잠긴 부부 앞에서 엉뚱한 질문과 코멘트를 쉴 새 없이 날리곤 합니다.
하지만 7일 동안 치바와 함께 있으면서 부부는 조금씩 웃음과 안식을 찾아갑니다. 심각한 위기와 좌절을 겪지만 치바 덕분에 기운을 얻고, 위안을 받고,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복수에 대해, 남은 삶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담기 위해 야마노베와 치바가 챕터마다 번갈아 화자를 맡습니다. 특히 평생 죽음을 두려워했던 야마노베의 아버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죽음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태도가 적잖은 분량에 걸쳐 묘사되는데, 살짝 지루하긴 하지만 치바가 죽음의 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다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작인 ‘사신 치바’의 마지막 수록작에 치바가 처음 본 파란 하늘을 보며 감동받는 장면이 있는데, 야마노베를 조사하는 치바가 다시 한 번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과연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는 성공할 것인지? 도대체 야마노베 부부를 향한 혼조의 끝없는 악의의 정체는 무엇인지? 7일의 조사를 마친 치바가 야마노베에 대해 내린 결정은 ‘可’일지, ‘보류’일지? 이 많은 기대와 의문들 덕분에 페이지는 아쉬울 정도로 금세 넘어갑니다.
‘사신 치바’에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을 읽은 독자에게는 치바의 장편이 좀 어색하거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등장인물과 단단하게 압축된 스토리로 무장한 단편들에 비해 한 인물에 대한 7일의 조사 기간은 지루하거나 장황하게 보였고, 특히 야마노베가 화자인 챕터에서는 치바 특유의 매력이 감소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랜만에 속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당연히 연작단편집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은 저뿐 아니라 치바의 팬이라면 대부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가 단편만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듯이 치바의 다음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단편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