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2
스티븐 킹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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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역사를 가진 오버룩 호텔은 혹독한 기후 탓에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문을 닫습니다. 그 기간 동안 관리자로 취업한 잭 토런스는 가족과 함께 아무도 없는 호텔에 머물게 됩니다. 잭은 단편소설과 희곡을 쓰며 교사로 재직했지만, 치명적인 알코올중독과 학생 폭행으로 인해 해직됐고, 그의 폭력은 가족을 향한 적도 있습니다.

한편 아들 대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5살 소년입니다. 같은 능력을 지닌 오버룩 호텔의 요리사 딕 할로런에 따르면 그것은 빛(샤이닝), 환상, 예견이라 부르는 것이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오버룩 호텔에서의 생활이 결정되자마자 대니는 그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감합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 잭과 아내 웬디, 대니 앞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생물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버룩 호텔이 내뿜는 광기는 세 사람을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은 물론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아붙입니다.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서평단에 뽑혀 책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전편이라 할 수 있는 샤이닝을 읽기로 했습니다. “36년 만에 출간된 샤이닝의 속편이라는 홍보문구처럼 닥터 슬립샤이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이제는 중년이 된 대니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36년 전 5살 소년이던 대니가 겪은 참극을 읽어야 닥터 슬립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스티븐 킹의 대표작 샤이닝을 뒤늦게나마 읽게 됐습니다.

전체적인 인상부터 말하자면, 호러물이나 스티븐 킹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닙니다.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기 힘든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버룩 호텔의 카리스마는 때론 난해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서평을 쓰기 전 내용을 복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오버룩 호텔 곳곳에 배치된 여러 가지 소품들입니다. 잭이 수시로 씹어 먹는 아스피린 계열의 엑세드린은 그의 광기를 부추기는 촉매제 같았고, 호텔 곳곳의 크고 작은 소품들은 마치 직접 눈으로 보듯 상세하게, 또 곧이어 벌어질 어떤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긴장감 있게 묘사됐습니다. 잭에게 창작욕과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스크랩북, 스스로 움직이는 낡은 엘리베이터, 살아 움직이는 동물 전정나무, 그리고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보일러 등은 초반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가볍게 언급되다가 사건과 함께 그 의미를 증폭시키면서 오버룩 호텔이 내뿜는 악마적 기운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소품못잖게 인상적이었던 건 오버룩 호텔 곳곳에서 수시로 들리는 환청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입니다. ‘또 이성을 잃었군, .’, ‘그곳 가까이 가지 마라... 절대로.’, ‘이리 나와, 이 새끼! 이리 나와서 남자답게 벌을 받아!’ 등 주로 잭과 대니가 듣곤 하는 이 기괴한 목소리는 내용도 섬뜩하지만 특이한 방식으로 서술돼서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즉 따옴표나 괄호로 표시된 채 문장의 한 가운데 툭툭 삽입되거나 맥락 없이 끼어들곤 하는데, 처음엔 이런 방식이 너무나 낯설기도 하고 그 의미조차 알 수 없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러 차례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직접 들리는 듯한, 즉 오버룩 호텔의 환청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으스스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스티븐 킹의 작품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그의 세계관이나 독특한 서술방식이 낯설 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다 읽은 뒤 몸과 머리가 얼얼한 상태에서 읽은 해설 : 스티븐 킹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덕분에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전반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닝을 읽으면서 이건 뭐지?”라고 의문을 품었던 부분들이 적잖이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본편의 줄거리가 공개돼있어서 해설을 먼저 읽어선 안 되겠지만, 스티븐 킹의 초심자라면 한번쯤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입니다.

 

(해설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스티븐 킹의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 고립된 공간과 고립된 인간(가족), 또 거기에서 비롯되는 끔찍하고 기이한 비극은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연상시켰습니다. 토속적인 느낌이 강조된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서도 비극은 고립과 밀접하게 연관돼있습니다. 또한 가족염력이라는 개념 역시 두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코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선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이 샤이닝에서 감지된 것은 미국식 호러는 왠지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현상일 거라는 문화적 선입견 때문인 듯 보입니다. 어쨌든 스타일이나 화법 자체가 전혀 다른 작가들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호러물을 위해 비슷한 코드를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워 보인 건 사실입니다.

 

책이 배송 되는대로 닥터 슬립을 읽을 예정인데, 아마 샤이닝을 읽지 않았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나 몰입감이 훨씬 떨어졌을 거란 생각입니다. 스티븐 킹의 호러물을 연이어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36년이 지난 후 대니 토런스가 어떻게 성장했을지, 또 이번에는 무슨 기막힌 상황과 마주칠지 궁금하다 보니 닥터 슬립이 배송되는 즉시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어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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