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량 - 마지막 15분의 비밀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김인순 옮김 / 예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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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섹스는 물론 술과 담배까지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교리를 표방해온 엘로힘 교회에서 지역목자와 상담역이라는 높은 지위를 갖고 있던 남자들이 연이어 독살당합니다. 율리아 뒤랑은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동료 형사들과 탐문을 이어가던 중 피살자들이 실은 추악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범인은 피살자들과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뒤랑의 탐문과 추리는 사소한 단서들 외에는 계속 헛발질만 날릴 뿐입니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피살자들의 난잡한 과거사가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지만, 대부분 엘로힘 교회 신도인 사건 관련자들과 유족들은 굳게 입을 다뭅니다. 그 사이 교회와는 연관 없는 희생자가 나타나자 뒤랑은 패닉에 빠집니다.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두 전작 - ‘영 블론드 데드’, ‘12송이 백합과 13일 간의 살인’ - 때보다 뒤랑은 더 많은 맥주를 즐겨 마시고, 더 많은 담배를 입에 달고 삽니다. 이번에 그녀가 맡은 사건은 피살자들의 훼손 상태만 놓고 보면 전작들보다 덜 잔혹하지만, 사건의 배경과 동기는 역시 가족이 연루된 끔찍한 과거사를 중심으로 설정돼있습니다.

 

피살자들의 가족은 하나 같이 폭압적이고 경직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피살된 가장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종교에 결부시켜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어왔습니다. 또한 그들은 집밖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탐욕과 욕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삶과 그 가족을 붕괴시키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막장에 콩가루까지 버무린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전형들입니다. ‘가족이 안식처이자 보호벽이 아닌 상처를 내는 흉기로 존재할 때 그것은 타인보다 더 지독하고 무자비하게 작동할 따름입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피살자들의 추악한 단면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뒤랑은 욕지기와 함께 지금 자신이 꿈꾸고 있는 행복한 가족에 대해 회의를 느낍니다. 그녀가 만나고 있는 베르너 페트롤은 유부남입니다. 불화 중인 아내와 곧 이혼할 거라며 뒤랑과의 행복한 미래를 몇 번씩 맹세하지만, 뒤랑은 그의 말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한편에선 수사가 진척되면서 베일에 싸여있던 끔찍한 가족사가 한 꺼풀씩 벗겨지지만, 다른 한편에선 동료 형사 프랑크가 아내의 임신 소식에 마냥 행복해합니다. 뒤랑은 진척 없는 수사와 가족의 극단적인 양면을 지켜보느라 온종일 진이 빠집니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코드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치사량은 자극적인 느낌이 강했던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무겁고 비극적인 인상을 풍깁니다.

 

1년 간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세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일정한 패턴의 전개와 엇비슷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범인 또는 피살자에게 불행한 가족사를 부여함으로써 무게감과 진정성을 어필합니다. 동시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합니다. 대중성이 우선되는 장르에서 이런 포장은 당연히 선호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에 수반되어야 할 복잡하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이 늘 부족하다 보니 왠지 얄팍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좀 풀어서 설명하면, 뒤랑과 동료들은 같은 인물, 같은 장소를 며칠씩 연이어 탐문하고 뒤지고 다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적인 진척을 이뤄내진 못합니다. 간혹 촘촘한 눈썰미나 번득이는 추리가 빛나기도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제보나 예상치 못한 상황 덕분에 수사가 일보 전진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범인을 특정하게 되는 계기는 우연하고 엉뚱한 곳에서 발견됩니다. 등장인물은 많고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자주 벌어지지만 단선적인 구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범인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고, 범행 동기는 알고 보면 조금은 맥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건 먹고, 마시고, 씻고, 갈아입는 뒤랑의 사생활은 과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미루어보아 이런 아쉬운 점들은 후속작에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스릴러는 중독성이 무척 강합니다. 율리아 뒤랑 역시 희소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여형사로서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단선적이고 이런저런 비슷한 아쉬움이 눈에 빤히 보이더라도 작가와 주인공이 쳐놓은 잔혹하고 끔찍하면서 다분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레임은 쉽사리 외면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뒤랑과의 만남에서는 이왕이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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