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고교 야구선수 가쓰히코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그와 함께 선수생활을 하다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야마세 역시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됩니다. 가쓰히코의 동생 신야 문제로 우연히 사건에 휘말린 탐정 하스미와 딸 가요코는 영리한 전직 경찰견 마사와 함께 살인사건의 진상 파악에 나섭니다.

한편, 아내의 죽음 이후 대형 제약사 총무과장 보좌라는 한직으로 밀려난 기하라는 고다 전무의 협박범 소다와의 연락책이라는 불쾌한 미션을 맡습니다. 뒤늦게 고다 전무가 협박당하는 이유를 알게 된 기하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인질로 잡힌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다 전무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가쓰히코의 죽음에 소다라는 인물이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된 가요코는 그의 행방을 찾던 중 누군가에게 납치된 뒤에야 사건의 전말을 깨닫습니다. 5년 전, 고다 전무가 벌였던 끔찍한 만행이 당시 12살 소년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 만행의 유산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일련의 참혹한 사건들을 일으켰다는 것을...

 

미미 여사의 첫 장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색다른 기대감을 가졌던 작품입니다. 1989년에 발표됐다고 하니 25년 전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첫 장편을 너무 늦게 읽게 된 건 유감이지만, 어쨌든 파릇파릇했던(?) 미미 여사의 과거와의 만남은 괜찮은 느낌이었습니다.

 

미미 여사답게 첫 장편부터 사회적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탐욕스러운 대형제약사의 만행, 그것을 미끼로 협박과 사기를 일삼는 쓰레기 같은 어른, 그리고 형을 잃고 남은 가족들마저 해체되는 참담함을 겪어야 하는 어린 신야의 운명 등 분노를 자아내는 사회적 이슈를 한데 버무려놓았습니다.

이야기는 심플해 보이지만 캐릭터와 사건은 꽤 복잡하게 이뤄져있고, 무관해보이던 두 사건 - 가쓰히코의 죽음과 대형제약사 협박범 - 이 접점을 이루는 지점은 정교한 장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부녀 탐정 하스미 일가와 탐정견 마사가 신야와 함께 하나씩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단서 속에 숨은 의미들을 조합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 어디선가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기도 하지만 - 허망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전해주면서 수사에 참여한 모든 인물들과 독자에게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 장편인데다 25년 전의 작품이다 보니 미미 여사의 저력이 발휘된 모방범이나 낙원을 읽은 독자라면 이런저런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사건 속에 담으려다가 혼란을 야기한 부분도 있고,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된 퍼펙트 블루의 정체는 적잖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사건을 일으키거나 끌고 가는 인물들에게 부여된 동기도 조금은 모호한 점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친절하게사건의 전말을 설명한 부분은 오히려 사족이 됐습니다.

 

사실, 제 경우 이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미미 여사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25년 전의 첫 장편이라는 정보 때문에 어딘가 좀 어설픈 데가 있겠지라며 마치 대리인이나 변호인이라도 된 듯 편파적인 호평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애써 중립적인 태도로 결론을 내리자면... 미미 여사 본인의 역작들과 비교하면 역시 설익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이 작품 정도의 완성도도 갖추지 못한 채 이름값만으로 버티고 있는 작가들에 비하면 퍼펙트 블루는 별 4개는 충분히 자격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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