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버 소울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바이퍼 피쉬라는, 저절로 얼굴을 돌리게 만드는 끔찍한 외모를 가진 심해어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의 외모를 보고 그런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의 얼굴의 일부라도 본 사람들은 얼어붙거나 공포에 질리거나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양쪽 다리 길이가 5cm나 다른 탓에 늘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을 허우적댑니다. 그로 인해 어릴 때부터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남자의 이름은 스즈키 마코토. 그에게 삶은 지옥이고, 타인과의 소통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그런 스즈키가 난생 처음 사랑에 빠집니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고, 그 상대는 21살의 모델 미시마 에리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차 조수석에 그녀를 태운 뒤로 그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됩니다. 에리가 준 충격은 중1 때 새 세상을 안겨준 비틀즈의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녀는 살아갈 힘을 주었고, 자연히 그녀를 지키는 것이 스즈키의 삶의 목적이 됩니다. 그녀를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은 뒤, 그녀의 사진으로 온 벽을 도배합니다.

그런데, 그녀 곁을 맴도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녀의 상처를 보듬는 척 하며 그녀를 괴롭힙니다. 스즈키에게 있어 그런 자들은 마땅히 처리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스즈키는 기쁘게 그런 자들을 처리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 앞에 자신을 내보이기로 결심합니다.

 

어나더 에피소드S’에 버금가는, 주인공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강렬한 표지디자인 덕분에 호기심은 물론 읽고 싶은 욕심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간혹 표지와 제목에 속아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러버 소울은 표지디자인 이상의 만족감을 준 작품입니다.

 

스토커 스토리입니다. 그것도 끔찍하리만큼 집요하고 잔인한 스토커가 주인공입니다. 집착처럼 비틀즈의 모든 것을 끌어 모으던 스즈키는 그 열정을 무한히 증폭시켜 미시마 에리에게 바칩니다. 그녀를 관찰하고 녹음하는 것은 물론, 그녀를 괴롭히거나 추근대는 자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비틀즈의 앨범 Rubber Soul에 실린 노래들을 소제목 삼아 소설과 수기를 남깁니다.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여자와의 드라이브를 노래한 Drive my car, 재워준 여자의 방에 불을 지르는 내용의 Norwegian wood,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여자를 노래한 You won’t see me, 그리고, “네가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보느니 네가 죽는 꼴을 보고 말겠다. 평생 달아나 봐. 그럴 수 있다면..”이라 노래한 Run for your life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흔하고 상투적인 기성 작품과는 전혀 다른 스토커 스토리입니다. 그것은 독특한 형식미 또는 뒤통수를 치는 교묘한 트릭에 기인합니다. 스즈키의 1인칭 서술과 관련자들의 심문 답변으로만 이뤄진 구성은 그저 형식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반전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나름 적잖은 미스터리를 통해 수많은 트릭과 반전을 겪었음에도 마지막에 이르러 또 속았다!’라는 어이없는 자조와 마주치게 됩니다. “보세요. 웃고 계시네요.”라는 마지막 문장은 작가의 KO 펀치입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에둘러 이야기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 이 정도만 언급하겠습니다.

 

엔딩을 읽다가 문득 표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그의 눈빛, 수많은 빛깔로 불타는 머리칼, 전력을 다해 진심을 드러내는 몸짓... 그제야 왜 이 표지디자인이 그토록 강렬한 느낌을 줬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스즈키 마코토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지도 100%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 하나만 얘기하자면, 여러 화자가 심문에 답변하는 형식이다 보니 같은 상황에 대해 동어반복적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습니다. 쉽고 편안한 문장들이라 하루 안에 충분히 달릴 수 있는 작품이지만, 중복된 서술을 정리했더라면 좀더 밀도 있는 러버 소울이 될 수 있었을 듯 합니다. 아쉽지만, 그래서 만점에서 별 반 개를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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