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요미키타 중학교 3학년 3반으로 전학 온 사카키바라 코이치는 3반 주변 인물들이 연이어 기이한 죽음을 맞이하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사카키바라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신비한 여학생 미사키 메이를 통해 3반에 전해 내려오는 재앙의 이력을 알게 됩니다. 26년 전, 사고로 죽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벌였던 선의의 퍼포먼스 이래로 3반은 거의 매년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학생, 교사 또는 그들의 가까운 인척들이 자살, 병사, 원인불명의 사고로 인해 매년 많게는 10여 명씩 목숨을 잃어온 것입니다. 새 학년의 첫날, 학생 수에 비해 책걸상 1개가 모자라는 해마다 여지없이 재앙이 벌어진다는 패턴이 발견되자 존재해서는 안 될 누군가가 재앙을 일으킨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결국 10년 전부터 희생양을 만들어 참극을 막아보겠다는 나름의 대책을 실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사카키바라가 전학 온 1998년의 3학년 3반에는 지금껏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패턴이 나타났고, 그동안 몇 차례 성공했던 대책도 무용지물이 돼버리면서 곳곳에서 희생자가 속출합니다.

 

호러물 마니아는 아니지만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읽은 적 있지만, 제대로 된 서평을 쓰지 않던 때라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운 좋게도 속편 격으로 출간된 어나더 에피소드 S’ 서평단에 뽑혔고, 당장에라도 미사키 메이의 치명적인 클로즈업을 표지로 삼은 속편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왕이면 두 작품을 순서대로 읽는 것도 괜찮은 일 같아 책장에 꽂혀있던 어나더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분량만큼이나 이야기 역시 방대하게 짜여있어서 줄거리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또한 호러, 미스터리, 청춘 성장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가 믹스되어 있어서 이 작품은 OO라고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 역시 난감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금세 다 읽힐 정도로 몰입감과 속도감이 대단한 작품입니다.

 

요미키타 중학교 3학년 3반에 재앙을 몰고 온 존재해서는 안 될 누군가의 존재, ‘()’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의 상존, 졸업과 동시에 ()’에 관한 모든 기록과 기억이 재조정된다는 초자연적인 집단최면,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죽음의 빛깔을 볼 수 있는 미사키 메이의 의안(義眼) 등 명백히 비현실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설정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만, 그와 병행하여 사카키바라 일행이 재앙의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묘사돼서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100% 호러물로 여겨지진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비현실적인 호러 설정들과 미스터리 요소들이 잘 버무려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선지 읽는 동안 괴담과 미스터리를 맛깔나게 접목시킨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가 떠오르곤 했는데, ‘어나더의 경우 현대물이면서 괴담의 단골 공간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 공포심의 순도는 훨씬 더 높고 강렬했습니다.

 

서술트릭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나 일부러 문맥을 난해하게 만든 문장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후반부에 가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해놓은 경우가 꽤 많습니다. 독자에 따라 답답하거나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데, 일종의 서술트릭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나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속편 어나더 에피소드 S’의 초반 몇 페이지를 살짝 읽어봤는데, 역시나 이런 미완성 문장이 꽤 자주 눈에 뜁니다.)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쉽게 느껴졌던 점은 미사키 메이의 정체성 묘사를 위해 초중반에 과도하게 분량을 할애한 점입니다. 조금은 강요하듯 동어반복적인 상황들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미사키의 실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미사키에 대한 강조는, 역설적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사카키바라의 역할을 수동적이거나 의존적으로 보이게 만든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오싹한 호러물을 기대했거나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장르의 경계선에 위치한 어나더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딱히 기억에 남을 만큼 무섭거나 소름끼치는 대목도 없고, 그렇다고 명쾌하고 해피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나더의 가장 큰 매력을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양파껍질처럼 벗겨낼 때마다 드러나는 새로운 국면과 예측불허의 전개’, 그리고 독특함과 기이함을 겸비한 다채로운 캐릭터입니다. 두툼한 분량 때문에 읽기 전부터 부담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 두 가지 매력 덕분에 마지막 장에 이르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 몰라도, 이야기 자체만 보면 대부분의 독자가 만족할만한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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