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두 남자가 수상하다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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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장수정은 옆방에 사는 수상한 두 남자, 손선영-오현리와 벽간 소음을 통해 인연을 맺습니다. 악연으로 시작됐지만 고양이 연쇄살해 사건을 계기로 운명적인(!) 인연으로 발전합니다. 함께 살묘범(殺猫犯)을 뒤쫓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독극물의 존재를 발견하고, 일련의 고양이 연쇄살해가 살인을 위한 예행연습일 수도 있다는 추론에 다다른 세 사람은 용인경찰서 장하나 경사의 도움을 받기에 이릅니다. 이어 우려했던 독극물 살인이 실제로 벌어진 현장에서 송파경찰서 백용준 형사와 맞닥뜨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민간인 신분으로 수사에 참여하게 된 일행은 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던 충격적인 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한편, 잠실희망병원에는 17살 아들 지유에게 이식할 심장을 기다리는 정상우-양영자 부부와 어머니에게 이식할 심장을 기다리는 박성호 등 두 가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꺼져가는 가족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였고, 불법적인 장기매매는 물론 이식의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타인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생각까지 품고 있습니다.

 

블랙 코미디 풍의 제목과 표지 때문에 유쾌 발랄하고 가벼운 이야기로 예단할 독자도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수준 높은 한국 장르물을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웃집~’은 그 가운데 가장 독특한 색깔을 지닌 작품이었습니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코지 미스터리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유쾌함과 긴장감을 쉴 새 없이 교차시킨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건만 놓고 보면 한없이 무겁고 음울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이식을 기다리는 두 가족의 초조함과 극단적인 선택, 그리고 고양이 연쇄살해와 독극물 살인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대목은 당연히 그런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28살의 좌충우돌 일러스트레이터 장수정과 10년 연상의 배 나온 추리소설가 손선영, 아버지 연배인 오현리의 에피소드는 로맨틱한 소동극을 연상시킬 정도로 럭비공처럼 통통 튀어다닙니다. 특히 사랑싸움 하는 연인 같기도 하고,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파트너 같기도 한 장수정과 손선영의 위태위태하면서도 쿵짝이 잘 맞는 콤비플레이를 읽다 보면 시리즈물의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오현리, 장하나, 백용준 등 두 사람을 지원사격하는 조연들 역시 뚜렷한 개성과 적절한 분량을 통해 이야기를 탄탄히 떠받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몰입감과 긴장감을 살리는 결정적 역할은 사건의 몫입니다. 작가는 2011년을 뒤흔든 구제역 사건과 음지에서 자행되는 불법적인 장기매매라는, 어찌 보면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두 테마를 한 이야기 속에 잘 엮어 넣었습니다. 특히 범행도구인 치명적인 독극물을 두 테마의 연결끈으로 설정한 덕분에 사실감은 물론 지금이라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현실적인 공포심도 살려냈습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작품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방대한 영역에 걸친 꼼꼼한 자료조사, 또는 풍부한 직간접 경험들의 흔적입니다. 장수정을 당황하게 만드는 손선영-오현리의 현란하고 빈틈없는 말빨은 말할 것도 없고, 사건 관련 데이터, 다양한 캐릭터들의 인구사회학적 묘사를 세세히 읽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집필에 임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도 여럿 있었는데, 가장 큰 건 리얼리티에 관한 것입니다.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 새 민간인 신분인 세 남녀가 경찰 수사에 합류한 상황이 됐는데, 약간 얼렁뚱땅 넘어간 듯한 느낌이랄까,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 때 읽는 내내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대목입니다.

두 번째는 손선영과 장수정의 추리과정이 별 어려움 없이 술술 풀려나간 점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조언이 주어지긴 하지만 치명적 독극물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나 구제역과의 연관성, 그리고 살인범이 노리는 이익을 추리하는 과정은 두 주인공이 별 고생 없이 작가가 안내한 대로만 따라간 느낌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미스터리 독자라면 뭔가 뒤집어지는엔딩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거의 정공법에서 벗어나지 않은, 딱 기대한 만큼의 엔딩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봉인된 추리 대담에서 작가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쯤 빵 터지는 게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탓에 적잖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작가가 직업은 물론 이름까지 본인과 같은 주인공을 내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손선영은 미드 캐슬에서 여형사를 돕는 추리소설가 나단 필리온을 연상시킬 만큼 여러 가지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였습니다. 손선영-장수정 콤비를 주인공으로 한 후속작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현실만 잘 극복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시리즈의 탄생도 기대해 볼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용인서의 장하나 경사와 송파서의 백용준 형사가 이들의 지원군이 됐으니, 어쩌면 그런 약점은 차기작부터는 염려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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