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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두 개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
정해연 지음 / 사막여우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반나절 만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감이 무척 빠른 작품입니다. ‘두 개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한 명의 살인자는 초반에 공개되고, 나머지 한 명 역시 달리 눈 돌릴 필요 없이 금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심플한 구조지만, 이 작품은 ‘누가 살인자?’라는 것보다는 ‘왜?’ 또는 ‘어떻게?’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진범 찾기 미스터리와는 차별화된 재미를 전해줍니다.
‘더블’의 외양은 ‘형사 대 범인’이라는 진범 찾기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메인 스토리는 두 명의 살인자 간의 두뇌게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두 살인자는 스타일은 달라도 그 뿌리는 비슷한 사이코패스로 설정됐는데, A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B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B는 A의 계획을 깨달은 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추격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사이코패스의 살인 행각 지켜보기’ 이상의 어떤 느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재도, 엔딩도 단순히 ‘보여주기’를 넘어서지 못했고, 결국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에는 불쾌한 느낌마저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블’의 경우,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연쇄살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사이코패스의 본질에 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고, ‘진실은 무엇이고, 누가 범인인가?’라는 도식적인 결론 대신 잔혹하면서도 독특한 엔딩을 선택함으로써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여운을 남깁니다.
다만, 문장이나 구성, 캐릭터 설정 등에서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 보이는 아마추어적 인상을 자주 받았는데, 그 가운데 아쉬운 점을 두어 가지만 꼽아보면, 우선 안이한 구성 때문에 곳곳에서 긴장감을 떨어뜨린 점입니다. 후반에 반전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설정이 한 가지 있는데, 웬만한 독자라면 이 설정을 진작 눈치 챌 수 있게끔 이야기가 구성돼있습니다. 말하자면 셀프 스포일러라고 할까요?
캐릭터 설정도 쉽고 편하게 간 듯 보였는데, 가령 강남에 살면서 세련된 헤어와 의상은 물론 클래식을 즐겨듣는 사이코패스의 설정은 클리셰를 넘어 오히려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 아직 사이코패스로서 대단한 이력을 쌓은 것도 아닌 인물이 낯선 곳에서 발견한 시신을 보고 놀람이나 충격보다 살인범에 대한 존경심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드 ‘덱스터’의 주인공이 아닌 다음에야 솔직히 오버로밖에 안 보였습니다. (실제 ‘덱스터’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꽤 똑똑하고 철저한 사이코패스로 설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조차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 근거도 없이 그저 상황만으로 상대방을 용의자로 몰아가는 장면도 있는데, 좀더 꼼꼼한 구성과 디테일한 설정으로 무장했다면 훨씬 더 고급스런 질감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른 독자의 서평을 보니 정해연의 ‘전공’이 로맨스였다고 하는데 ‘더블’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후속작(몇 년 후의 이야기든 프리퀄이나 비기닝이든)도 좋고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라도 괜찮으니 장르물 쪽에서 제대로 필력을 발휘한다면 아마 많은 독자들의 기대를 모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