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흩날리는 밤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 3월에 기타모리 고의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다 읽고난 후

좀처럼 맛보기 힘든 묘한 고요함과 아스라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린 6편의 단편 가운데 호불호가 갈리긴 했어도

표제작인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마지막 수록작 물고기의 교제

제목만큼이나 애틋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수작이었습니다.

 

더불어 가나리야라는 아담한 맥주 바와 그곳의 주인장 구도 데쓰야의 캐릭터 덕분에

, 나에게도 그런 아늑한 아지트 같은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 좋은 기억이 아직도 잔잔히 남아있는데,

구도 데쓰야의 맥주 바 가나리야를 무대로 삼은 같은 작가의 단편집이,

그것도 벚꽃 흩날리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는 소식에

그때의 묘한 고요함과 아스라함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몰려왔고,

괜히 마음이 들뜨고 기분 좋을 만큼의 미열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 아래~’의 표지를 좌우로 반전시킨 듯한 디자인과 5편의 소제목을 보면서

마치 너무나 먹고 싶지만 그 예쁜 모양을 무너뜨리기 싫은 케이크를 눈앞에 둔 듯

설렌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겨 첫 수록작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1년 만에 다시 만난 맥주 바 가나리야와 주인장 구도 데쓰야는 외양은 그대로였지만,

왠지 조금은 속세에 물든 느낌이랄까?

아니면 은밀하게 숨겨놓고 혼자 즐기고 싶었던 단골집이

사람들의 입을 탄 덕분에 고유의 향을 잃고 북적거리는 맛집으로 전락한 느낌이랄까?

딱히 정리하긴 힘들지만, 분명 예전의 묘한 고요함과 아스라함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수록작마다 낯선(?) 손님들이 가득했고, 그들의 대화는 왠지 수다스럽게 들렸으며,

그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에피소드들은 어딘가 작위적인 냄새가 강하게 풍겼습니다.

치밀한 작전(?)으로 사람의 인연을 억지로 맺어주는 듯한 ‘15주년’,

지나친 비약 때문에 작가가 의도했던 애틋한 정서가 제대로 살지 못한 벚꽃 흩날리는 밤’,

풍자인지 판타지인지 구분할 수 없던 개의 통보등 앞의 세 편은

구도 데쓰야의 맥주 맛과 요리 솜씨 외에는 대체로 아쉬움과 실망만 남겨줬습니다.

 

그나마 뒤의 두 편인 나그네의 진실약속

다소 기타모리 고의 정서를 대변한 듯한 작품들이었는데,

꽃 아래~’에 실린 작품들이 대체로 미스터리를 읽는데 어느새 눈가가 붉어지는 이야기였다면,

이 두 작품은 미스터리 자체에 가까운, 말하자면 건조한 느낌이 더 강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물론 기타모리 고만의 독특한 전개와 예상치 못한 반전 덕분에 흥미롭게 읽히긴 했지만,

적어도 어딘가 한 곳쯤에서 진한 애틋함이 솟아나

눈가를 붉게 만들어주기를 기다렸던 기대감은 결국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단편집의 특성 상 모든 수록작에게 호평을 줄 수는 없지만,

전작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 그랬던 것처럼

적어도 한두 편이라도 마음을 움직이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랬다면, 이제 봄은 다 가버렸고, 벚꽃 역시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졌지만,

짧지만 화려하고, 화려하지만 애틋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을

잠시나마 조용히 음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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