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잭의 고백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복창교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장기가 사라진 채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연이어 발견됩니다. 신장 이식이 필요한 어린 딸을 둔 경시청 수사1과의 이누카이 하야토는 관할서 파트너 고테가와와 함께 범행 동기조차 파악하기 힘든 이 연쇄살인 수사에 뛰어듭니다. 끈질긴 탐문으로 두 희생자의 공통점을 알아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누카이의 수사가 장벽에 막혀있는 사이 결국 세 번째 희생자가 등장합니다. 얼마 후 다음 희생자로 예상된 자에게 진범의 전화가 걸려오자 이누카이와 담당 형사들이 총출동하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충격적인 엔딩이었습니다.

 

“‘반전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매 작품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아직은 낯선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에 대한 출판사의 격찬, 아직 못 읽었지만 그의 한국 첫 출간작 안녕, 드뷔시가 제8'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이란 점, 또 이 작품이 전설의 살인마 잭을 제목으로 차용할 만큼 잔혹한 연쇄살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이자 늘 관심을 갖고 있는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점 등 작가의 이력과 장르의 성격 모두 개인적인 취향에 비춰볼 때 안 읽고는 못 넘어갈 정도의 화려한 유혹이 난무했던 작품입니다.

 

참혹한 연쇄살인과 그 진범 찾기가 주된 내용인 군더더기 없는 정통 미스터리지만 이 작품이 사회파+메디컬 미스터리로 정의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참혹한 연쇄살인이 쾌락을 즐기는 소시오패스의 만행이거나 복수심에 불타는 개인의 무자비한 살인극이 아니라 뇌사자의 장기 기증이라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사회적 이슈와 밀접하게 연관돼있기 때문입니다.

장기 이식에 관련된 여러 주체들(기증자, 수혜자, 의료관계자 등)의 딜레마 혹은 탐욕과 함께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경직된 경찰의 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까지 가미된 덕분에 장기 적출 연쇄살인이라는 다분히 자극적인 사건은 기대 이상의 볼륨감을 갖추게 됩니다. 거기에다 주인공인 이누카이 하야토에게 신장 이식이 필요한 딸이 있다는 설정까지 곁들여지면서 독자는 장기 이식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좀더 깊은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뇌사자는 뇌는 죽어 있지만 피가 흐르고 살도 따뜻합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며 살아남을 자격은 누구한테 있는 거야?” 등 본문 곳곳에서 뇌사와 장기 이식에 관한 무거운 논쟁이 벌어집니다. 또 일반인이 뉴스를 통해 접하는 장기 이식의 전후 사정은 대부분 미담으로 포장돼있지만 실상 기증자 가족에게 장기 적출이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과 다름 아닌 일이란 점도 여러 차례 강조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장기가 뿔뿔이 흩어진 채 누군가의 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건 잊을 수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고통스런 일입니다. 흔히 미화되듯 기증자의 가족은 자신의 혈육이 누군가를 살리고 떠났다는 보람과 행복감만으로 남은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작가는 이런 극렬한 갈등과 고통을 디테일하게 그리면서 그것들이 끔찍한 연쇄살인의 기폭제로 작동하게 된 과정을 생생한 리얼리티와 함께 묘사합니다.

 

반전을 위해 다소 뜬금없이 급선회한 엔딩의 위화감이 아쉬움으로 남긴 했지만 그저 훈훈한 미담으로만 여겨졌던 장기 이식의 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나 그 이면의 문제들을 연쇄살인 미스터리와 엮어낸 작가의 필력은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더불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이누카이와 (관할서 형사) 고테가와 콤비가 눈길을 끌었는데, 전혀 극단적이지도, 억지스럽게 포장되지도 않은 캐릭터들이지만 두 사람의 조합은 적절한 긴장과 휴식을 제공하며 묘한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선지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두 편밖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왠지 앞으로 꽤 주목하게 될 것 같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후속작이 이누카이&고테가와 시리즈라면 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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