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을 맞이한 글렌과 실라, 그리고 딸 켈리. 하지만 그날 밤, 실라는 만취한 채 차 안에서 정신을 놓고 있던 중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와 부딪혀 즉사합니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글렌과 딸 켈리는 심각한 패닉에 빠집니다. 개축 중이던 고객의 집이 전기 설비 불량으로 전소된 일로 글렌의 회사는 위기에 처하고, 딸 켈리는 실라의 사고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에 이릅니다. 원수처럼 지내던 장모는 이 기회에 손녀 켈리를 데려가려고 하고, 실라의 절친이었던 앤 부부와 벨린다 부부에게까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던 중 글렌은 한 사설탐정으로부터 실라와 그녀의 절친들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실라의 소지품과 관련된 협박까지 받게 되자 글렌은 실라의 죽음이 단순한 음주운전 사고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량(500페이지 내외)인데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과 에피소드 덕분에 오후 한나절 만에 마지막까지 달렸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가족 지키기 스릴러의 원작으로 손색없을 만큼 스피드와 재미, 반전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글렌 가버를 지켜보고 있으면 나쁜 것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내의 의문의 죽음, 회사의 위기,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 딸 켈리 방을 향한 괴한의 총격 등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이라도 겪기 어려운 일들을 불과 몇 주 사이에 집중포화를 맞듯 한꺼번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평화롭던 가족은 해체되고,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자들의 고통은 깊어질 뿐입니다.

 

이별 없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사고역시 린우드 바클레이가 가족을 중심에 놓고 풀어간 이야기입니다. 가족이 주인공인 미스터리나 스릴러는 대체로 재미와 불편함을 동시에 주는 편이지만, 이렇게 쉴 새 없이 연타를 맞는 주인공을 보면 불편함 쪽이 훨씬 더 배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제대로 된 악에 대한 응징이 없다면 책을 다 읽고도 찜찜할 것 같다는, 즉 주인공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슈퍼맨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악을 물리치고 행복한 결말이 맺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사고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자 가장 취약한 고리입니다. 글렌 가버는 형사도, 탐정도 아닌 평범한 건축회사 대표입니다. 무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두뇌 회전이 뛰어난 지략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추리와 탐문은 언제나 제대로 갈 길을 찾아갑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실함과 근면함까지 갖춘 그는 인간적 슈퍼맨임에 분명합니다.

 

반면, 그와 동시에 그의 지나치게 현명한 행보가 눈에 거슬릴 때가 종종 있는데, 작가가 너무 친절하고 쉽게 글렌이 나아갈 길을 설정해준 탓입니다. 여기 가면 단서가 기다리고 있고, 저기 가면 증거가 기다리고 있고,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방이 알아서 심증을 굳힐만한 진술을 흘려주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면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 힌트를 건네줍니다. 그러다 보니 글렌은 본의 아니게 점점 진짜 슈퍼맨이 될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인가 이미 뛰어난 탐정이 되어 있는 그를 보며 묘한 거부감과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몇 가지 아쉬움을 제외하면 사고는 대체로 잘 읽히는 작품입니다. 설정은 단순하지만 그로부터 파생된 에피소드들은 다채롭게 뻗어나갑니다. 억지로 갖다 붙인 설정이 아니다 보니 사실감과 설득력은 자연스레 얻어집니다. 또한 짧다고 느껴질 만큼 챕터들을 세분화 해놓았는데, 이런 구성 덕분에 속도감과 긴장감이 상승될 수 있었습니다.

 

나름 아쉬움도 있었지만, 린우드 바클레이의 필력에는 대체로 만족한 편이었고,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작품 두 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해주는데도 충분했습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만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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