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19851, 캔자스의 시골 농장에서 일가족이 참혹하게 피살된 채 발견됩니다. 어머니 패티와 두 딸이 피살됐고 막내딸 리비는 겨우 목숨을 건졌으며 맏아들 벤은 가족 살해범으로 체포됩니다. 그렇게 24년이 흐른 어느 날, 리비는 벤의 무죄를 믿는 추종자들의 연락을 받습니다. 그들은 사건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사건과 관련된 물건을 넘겨주거나 자신들이 조사했던 내용을 토대로 수감 중인 벤과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주면 비용은 물론 사례까지 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과거였고 벤이 무죄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당장 생계가 막막했던 리비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24년 전 참사와 관련 있는 인물들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만남이 진행될 때마다 새로운 단서와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고 리비는 가족의 비극 뒤에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과거(사건 발생 당일)와 현재가 교차로 진행되는 방식이며 과거의 경우 어머니 패티와 오빠 벤의 챕터로 다시 나뉩니다. 필요에 따라 다른 인물들의 챕터가 간간히 등장하기도 하지만,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니는 현재의 리비의 이야기에 맞춰 24년 전 사건 당일의 이야기가 맞물리듯 교차되면서 긴장감을 높입니다.

 

나를 찾아줘를 읽었을 때의 느낌도 그랬지만, 길리언 플린의 작품은 묵지근한데다 후유증을 길게 남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평범한 개인이 겪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참담함을 집요하리만치 디테일하게 파고들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비밀들과 그것이 남기는 충격 역시 억지스럽게 과장하거나 강조하기 보다는 태연스러울 만큼 담담하게 묘사해서 오히려 독자들을 더 힘들게(?) 만듭니다.

1980년대 중반 캔자스의 황량한 농장과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 리비 가족에 대한 묘사, 오빠 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사건 당일 행적에 대한 묘사, 리비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오랜 상처 일명 다크 플레이스’ - 에 대한 묘사, 그리고 현재의 그녀의 눈에 비친, 24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암울한 소도시의 황폐함에 대한 묘사 등 길리언 플린의 냉정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은 들여다봐서는 안 될 심연의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호기심을 동시에 전해주는 일종의 중독성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서사 때문에 속도감이 다소 떨어지고 대목에 따라 장황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24년 전의 진실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라는 선입견이 들기도 했고, 리비 역시 영민하거나 복수심에 불타는 캐릭터가 아니라 가난하고, 투명인간 같고, 스스로 삶을 폐쇄시킨 채 살아온 평균 이하의 여자이다 보니 읽는 내내 긴박한 미스터리보다는 고통스러운 진실 찾기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길리언 플린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다가 중반부에 이르러 본색을 드러내며 속도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리비가 가족의 비극의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는 저절로 빨라지고 길리언 플린만의 중독성 강한 매력들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합니다.

 

어떤 독자들은 다크 플레이스2013년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도 하지만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은 독자들도 있습니다. 길리언 플린의 작품이 내뿜는 무겁고 어둡고 긴 후유증에 대한 호불호 때문이겠지만, 사건보다 캐릭터에 천착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고통스러운 책읽기에 동참해볼 것을 권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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