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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 ㅣ 제인 오스틴 미스터리 1
스테파니 배런 지음, 이경아 옮김 / 두드림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절친 이소벨의 결혼을 축하하는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카그레이브 백작의 저택을 찾은 제인 오스틴은 연이어 벌어진 살인사건의 주요 목격자이자 참고인이 되어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립니다. 더구나 절친 이소벨과 그녀가 흠모하는 피츠로이 페인이 용의자로 지목되자 제인은 그들의 결백을 확신하며 관계자들에 대한 은밀한 탐문을 시작합니다. 무도회가 열린 스카그레이브 가문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꼼꼼히 조사하지만 막연한 심증만 늘어갈 뿐 명쾌하게 걸려드는 단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국 이소벨과 피츠로이 페인은 귀족의 범죄를 다루는 왕실법정으로 소환되고, 제인은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상태에서 드디어 왕실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예상치 못한 절체절명의 위기와 진실규명의 기회를 동시에 맞이합니다.
실존했던 작가를 픽션 속 주인공으로 설정한 특이한 형식, 19세기 초반의 영문학을 들여다보는 듯한 고전미 넘치는 문장, 그리고 연쇄살인의 진범 찾기가 함께 버무려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도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가 젊은 실학자들을 실명으로 등장시킨 연쇄살인 미스터리를 선보인 바 있지만, ‘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사랑받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삶 자체를 픽션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을 뿐 아니라 원탑 주인공으로서 손색없는 활약을 부여함으로써 ‘여자 셜록 홈즈’라 불릴만한 당대의 탐정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말하자면 팬픽(fan fiction)의 정수라고나 할까요?
‘오만과 편견’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할 정도로 오래 전에 읽었고, ‘엠마’는 영화로만 보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제인 오스틴이 스테파니 배런을 통해 우리 곁에 온 게 틀림없다.” 라는 미국 소설가의 평에 전적으로 공감할 정도로 마치 제인 오스틴 본인이 쓴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미스터리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순간순간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면서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상대방의 맹점을 야무지게 톡 쏘는 듯한 영국식 위트와 유머가 살아있으며 남녀 관계에 관한 한 요즘과는 확연히 다른 고전 영문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장점들은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낸 번역가의 힘에도 크게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미스터리로서의 장점도 잘 갖추고 있는데, 무엇보다 편지와 인편 외에는 달리 통신 수단이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덕분에 오롯이 탐정의 명민한 두뇌와 부지런한 발품에 의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장점은 셜록 홈즈와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 탐정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엽기적인 잔혹함이나 롤러코스터를 탄 듯 현란한 구성은 없지만 고전적인 추리 기법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묵직하고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만으로 독자들을 열광시켰던 그들의 활약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고전적인 미덕만 갖춘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는 페이지터너로서의 매력이 가득하고, 초반부의 예열을 거쳐 서서히 가속이 붙는 이야기의 전개 속도도 꽤나 스피디합니다. 이 작품이 ‘제인 오스틴 시리즈’의 첫 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후 발간될 시리즈를 통해 ‘셜록 홈즈라는 남자에 필적하는 여자 탐정 제인 오스틴’의 탄생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채로운 구성과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매력적인 주인공까지 더해진 덕분에 모처럼 즐거운 책읽기의 시간을 선사해준 ‘제인 오스틴 시리즈’가 한국에도 계속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