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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ㅣ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도조 겐야 시리즈’ 첫 편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을 읽은 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읽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재미가 반감된 느낌입니다. 신간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을 읽기 전에 순서대로 시리즈를 마스터하기 위해 연이어 읽은 것인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주인공 도조 겐야의 풍부한 지적 유희와 기발한 추리 과정이라든가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살인의 충격, 그리고 마지막 수십 페이지를 남겨놓고 벌어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범 찾기 등 오랜만에 읽어야만 느낄 수 있는 ‘미쓰다 신조 표 역사-호러-미스터리’의 진가가 연이은 책읽기 때문에 상당 부분 희석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마을과 대립하는 가문들이 배경으로 설정됐고, 마을을 둘러싼 산과 강에 깃든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 등장했고, 오랜 구원(舊怨)과 인간의 탐욕이 시한폭탄처럼 마을 곳곳에 만연해 있으며 우연이든 필연이든 도조 겐야가 그 마을에 나타나면서부터 천벌 또는 지벌로 여겨지는 참혹한 시신들이 발견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의 알리바이는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너무 선명하고, 희생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밀실 상황에서 발견되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상태로 훼손되어 있으며 험한 꼴을 당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의외의 인물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특히 ‘산마처럼~’에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연상시키는 동요 살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범인의 범행 동기를 더욱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증폭시킵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은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였던 ‘마지막 해결’ 장면입니다. 즉, 마지막 희생자가 발견되는 순간까지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오던 이야기가 도조 겐야의 최종 결과 발표에 이르러 급격히 그 힘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우선, 시종일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초자연적 현상들에 대한 설명이 누구나 쉽게 갖다 붙일 수 있는 ‘해석’ 수준에 머무른 점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 진범 확증 과정에서 일어난 몇 단계의 반전 중 적잖은 부분이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작위적으로 설정된 느낌을 줬다는 점 때문입니다.
물론 미쓰다 신조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대목들도 곳곳에 산재해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읽었던 한두 줄의 문장 속에 숨어있던 힌트들, 도조 겐야의 기이한 뇌구조만이 추론해낼 수 있는 기상천외한 독특한 해석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독자들의 예측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비장의 카드 등 적잖은 분량의 내용 곳곳에 공포, 재미, 호기심, 긴장감, 반전 등 다양한 종류의 ‘지뢰’를 잘 묻어 놓았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만의 중독성은 아마 이런 매력들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일본 미스터리보다 호불호의 경계선에 위태위태하게 놓여있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아무리 초현실적 역사-호러-미스터리와 담을 쌓고 사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한번만 제대로 맛보면 ‘미쓰다 신조처럼 중독되는 것’의 진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연속으로 미쓰다 신조 읽기’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전해준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첫 페이지를 열어버렸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신간을 곁에 둔 채 다른 작품을 집어 든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즈치~’를 완독하고 나면 ‘도조 겐야 시리즈’ 가운데 제일 먼저 읽었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예상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시리즈를 완주하는 재미도 남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