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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증후군 ㅣ 증후군 시리즈 1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통곡’, ‘우행록’(개정판 ‘어리석은 자의 기록’), ‘후회와 진실의 빛’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미스터리 속에 묵직하게 녹여냈던 누쿠이 도쿠로의 ‘증후군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2009년에 발간됐지만 시리즈를 한꺼번에 읽겠다는 생각에 계속 미뤄오다가 이제야 그 첫 권을 읽게 됐습니다.
경시청 인사과의 다마키는 형사부장으로부터 비밀임무를 직접 지시받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주위에서 볼 때는 한직으로 밀려난 무기력한 중년으로 보일 뿐이지만, 그는 전직 형사 하라다, 탁발승 무토, 노동자 구라모치 등으로 구성된 비밀수사팀의 수장이며, 겉모습만으로는 생각이나 감정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다마키의 팀이 맡게 된 사건은 최근 몇 년간 도쿄에서 벌어진 20대 남녀의 실종입니다. 딱히 사건이라 할 만한 정황은 없지만, 다마키는 팀원들에게 집요한 탐문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종자들 사이에 독특한 관계가 있음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던 중 실종자 가운데 한 명이 피살된 채 발견됩니다. 수사팀은 용의자를 뒤쫓는 한편,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폭력적인 인디밴드와 그들이 거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약류의 거래루트를 파헤칩니다.
그동안 읽었던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았기 때문에 ‘증후군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 역시 그만큼 높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적어도 ‘실종증후군’은 조금은 의외다 싶을 정도로 실망감을 느낀 작품이었습니다.
제목부터 ‘실종’에 관한 이야기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실종’ 자체는 도입부 역할만 할뿐 메인 스토리는 그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평범한 폭력과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특이한 형태의 실종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소재로 삼은 점이나, 다마키를 비롯한 수사팀의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사실감과 치밀함 덕분에 매력적이었지만, 굳이 ‘실종’을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도 나머지 이야기의 진행에 무리가 없었을 정도로 마치 앞과 뒤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엔딩으로 갈수록 의문점만 쌓일 뿐이었습니다. “왜 이 책의 제목을 실종증후군이라고 지었는가?”, “다마키와 그의 팀원들은 은밀하면서도 터프하고, 각자만의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왜 이런 식의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 우수한 팀원들이 몇날며칠을 고생해가면서 수사한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등등...
정리하자면, ‘실종’으로 시작됐지만 살인사건의 발생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실종’과는 먼 방향으로 급전환됐고, 결국 ‘뛰어난 수사팀들의 평범한 범인잡기’에 그쳤다고 해야 할까요? 누쿠이 도쿠로가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이 작품의 메시지 – 가족에게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게서 벗어난다고 해도 '스스로'에게서는 벗어날 수 없다 – 가 왠지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정작 이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할 내용 자체가 너무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감이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곧이어 읽을 ‘살인증후군’이나 ‘유괴증후군’에서는 ‘증후군 시리즈’에 대한 호평을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