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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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의 제이컵이 동급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자 검사인 아버지 앤디 바버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사 조너선을 비롯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기소 이후 재판에 이르기까지 몇 달 동안 제이컵의 가족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앤디는 꼭꼭 숨겨왔던 불행한 자신의 가족사가 들춰진데다 그것이 제이컵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권력지향적인 후배 검사 라주디스는 제이컵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은 물론 유능한 선배인 앤디 바버의 검사로서의 이력을 끝장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재판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주진 않습니다.

 

책을 꽤 빨리 읽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분량의 작품에 비해 완주하는데 거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들이 드물지 않은 요즘 580페이지라면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지만, 워낙 무거운 내용인데다 편집도 빡빡해 보일 정도로 촘촘했고, 문학적인 표현을 통한 심리 묘사가 적잖은 양을 차지하고 있어 다 읽고 난 후 느낀 체감 페이지는 거의 1,000페이지에 달했습니다.

 

제이컵을 위하여는 단순히 범인 혹은 진실을 찾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해내는 용감한 부모의 투쟁기도 아닙니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재판 과정에 할애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법조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위기에 빠진 채 갈등을 벌이는 가족이란 설정 탓에 장르물로서의 매력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진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후 도착한 마지막 페이지에서 발견됩니다. ‘Defending Jacob’이라는 원제의 진정한 뜻도 바로 그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책읽기가 50여 페이지도 채 안 되는 마지막 챕터를 남겨놓았을 때 몇 가지 궁금함이 떠올랐습니다. 에필로그 치곤 다소 많은 분량이고, 새로운 반전이라든가 아직 설명되지 않은 상황들을 담기 위해선 한참 모자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앤디의 불행한 가족사와 재판 과정(라주디스 검사와 증인이 벌이는 심문)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이 많은 것들이 50페이지로 다 설명된다고?” 하지만, 작가가 날린 마지막 한 방은 기대와 우려를 뛰어넘는 큰 충격을 담고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쯤에 책을 접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능한 검사 앤디가 아들이 용의자인 사건 때문에 이성을 잃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내 아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근거 없는 논리만 내세웁니다. 앤디의 아내가 겪는 심리 묘사는 지루한 동어반복이었고, 용의자로 몰린 아들 제이컵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나 몰라라캐릭터로 묘사됩니다. 불행한 가족사와 개개인의 심리를 강조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적정선을 넘어 너무 깊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필요한 이야기니 어쩔 수 없다고 애써 자위하면서도 남아있는 막대한 분량을 확인할 때마다 그만둘까, 라고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으로 별 5개가 4개로 줄어든 결정적 이유입니다. 초중반의 지루함만 견뎌낸다면 뒤통수를 얻어맞는 쾌감에 관한 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경험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한 줄 평은 100페이지만 줄였다면 최고의 작품!”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위기에 빠진 가족을 지키는 이야기는 매체를 불문하고 긴장과 감동을 주는 소재지만, ‘제이컵을 위하여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해법을 보여줍니다. 영웅적인 아버지, 헌신적인 어머니, 나이에 걸맞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현명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할리우드 식 이야기와 달리 작가가 선택한 해법은 논란을 일으킬 만큼 독특하거나 가혹합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엔딩이었기에 제이컵을 위하여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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