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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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지상 6층을 가득 채운 주말 방문객들이 한순간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후일, 누군가는 불꽃을 봤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고 진술하지만, 실제로는 화재의 흔적도, 유독가스의 잔재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방문객들은 일제히 마트 밖으로 도망치기 위해 출구로 몰려들었고, 그 과정에서 내장 파열, 전신 골절, 질식 등의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참사 이후 조사원, 유족, 생존자 등이 둘씩 짝을 지어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사건에 관한 정보를 캐거나 참혹했던 기억들을 되새기거나 참사 전후에 벌어졌던 미스터리한 현상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펼쳐집니다.

 

본문 마지막 장을 읽자마자 얼른 다음 페이지를 넘겨봤습니다. 작가의 후기든, 번역자의 해설이든 뭐라도 읽어야 제대로 책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지 정보가 전부였고 남은 건 1인용 나무의자 그림과 ‘Q&A’라는 활자가 조그맣게 인쇄된 뒤표지뿐이었습니다. 결국 제 목록 속에 또 한 편의 온다 리쿠의 문제작이 추가되고 말았습니다.

 

발발 원인에 관해 어떤 논리적 설명도 불가능한 대형 참사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있고, 나이, 성별, 직업이 제각각인 인물들이 그에 관해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목격한 사실을 청취하는 조사원도 있고, 취재가 목적인 언론 관계자도 있고, 살아남았으나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건 자체와는 전혀 관계없는 인근 주민들도 등장합니다.

참사 직후의 정황을 소개한 첫 챕터를 읽다보면 범인의 정체 또는 사건의 원인이 후반부쯤에는 자연스레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참사 이후 근 7-8개월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는 2/3쯤에 이르렀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와서 진실 따위가 무슨 소용이지?”

 

아마 온다 리쿠의 작의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다양하고 기구한 사연과 트라우마 그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온다 리쿠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기뻤지만, 누군가는 그날 누군가가 죽어줘서기뻤습니다. 누군가는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삶 자체가 엉망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남들의 트라우마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식으로 참사를 일으켰는지는 더 이상 관심 밖의 일이고 오로지 자신에게 닥친 느닷없는 불행에 격분하고 우울해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등장인물의 대화는 대체로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들의 묻고 답하기는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진실 찾기가 아니라 각자의 뇌리 속에 전혀 다른 모양새로 새겨진 그날의 기억에 대한 고백담이란 뜻입니다. 마치 대형 참사의 생존자나 유족이나 목격자들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자 추궁보다는 살아남은 탓에 겪어야만 했던 불면과 악몽, 떠나보낸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TV화면을 통해 겪은 간접적인 공포 등을 기억 속에 더 깊이 간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온다 리쿠의 독특함과 고유의 미덕이 작품 전반에 가득 배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후의 당혹스러움은 꽤 심각했습니다. 진실은 희미하고, 딱히 주인공이라 부를만한 존재도 없고,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성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고, 조금은 내 이해력의 부족 탓인가?” 의문스럽기도 했다가, 결국엔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내가 읽은 게 이런 거였나? 그렇겠지? 맞을 거야.”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제가 유별난 게 아니라면 ‘Q&A’는 꽤나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5:5쯤 될 거란 제 예상과 달리 대략 8:2쯤으로 나뉜 인터넷서점의 서평들은 잠시나마 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들 이 이야기를 이해했다는 뜻인가? 어느 대목에서든 호감을 느꼈고, 그래서 재미든 의미든 뭔가 하나는 제대로 건졌단 뜻인가?

 

올해 들어 유독 좋아하는 작가들의 특이한 작품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 가이도 다케루의 나니와 몬스터’, 다카노 가즈아키의 ‘KN의 비극등이 그 예인데, 대부분 읽고 난 후 한동안 얼떨떨해지거나 나만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들입니다.

‘Q&A’는 어느 정도 공백을 뒀다가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어떤 작품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재독할 때 제대로읽히는 경우가 있는데, ‘Q&A’는 그리 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3개에 불과한 야박한 별 평점에 1개 정도는 추가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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