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블론드 데드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율리아 뒤랑 시리즈는 한국에서 미완성 유작(‘신데렐라 카니발’)이 먼저 출간되고 뒤이어 데뷔작이 출간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시리즈 첫 작품인 영 블론드 데드1996년에 출간됐는데, 정밀한 과학수사가 제대로 기능하기 직전의 시기이다 보니 아날로그적인 수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제목대로 금발머리의 10대 소녀들이 연쇄살인의 피해자로 설정되어 있고, 그 범행수법은 거의 파괴와 해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잔혹합니다. 사체는 길거리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집안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부자부터 빈민에 이르기까지 계층도 다양합니다. 이 끔찍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주인공은 율리아 뒤랑과 수사반장 베르거 등 프랑크푸르트 경찰청 형사들입니다. 수사는 탐문 이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지지만, 사체는 연이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수사팀은 거의 패닉에 빠집니다. 율리아 뒤랑은 나름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증거는 찾을 수 없고 단지 우연히 얻은 정보와 심증만 가득합니다.

 

오랜만에 매력적인 여형사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헤비 스모커에 맥주를 즐겨 마시는 터프한 이미지와 함께 거침없는 언변과 정의감 등 주인공의 덕목을 고르게 부여받았으며, 넬레 노이하우스의 피아 키르히호프만큼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여형사입니다. 이 작품의 대부분의 미덕은 율리아 뒤랑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새로운 독일 미스터리 시리즈를 만나서 반가웠고, 출퇴근길에 주로 읽었음에도 금세 마지막 장에 이를 만큼 페이지도 잘 넘어갔습니다. 아직까지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작품이 국내에는 두 편밖에 출간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시리즈들도 빠른 시간 안에 만나보고 싶은 기대감을 갖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데뷔작의 한계라고 할까요? 읽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그런 느낌을 받곤 했는데, 줄거리를 정리하다 보니 이야기 자체가 빈약했고 꽤 많은 인물들과 서브 사건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의 역할은 거의 미미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수사팀 가운데 베르거 반장은 오프닝을 장식했지만, 정작 수사에서는 별 볼일이 없습니다. 심각한 가정문제를 지닌 슐츠 형사 역시 따로국밥처럼 겉돕니다. 율리아 뒤랑이 혐오하는 페터 쿨머는 등장 초반 내내 깐족거리는 얄미운 캐릭터였다가 어느 순간 아무런 동기도 없이 진지한 자세로 수사에 임하며 율리아 뒤랑을 돕습니다. 그야말로 수사팀 모두 병풍에 불과한 역할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피해자 가족이나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성적(性的)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고, 형태만 다를 뿐 위태위태한 가족 불화를 겪고 있으며, 심리 상담을 받아야할 만큼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인물을 찾아보기 힘든,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들입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불필요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존재감이 부족하거나 도식적이거나 작위적인 느낌을 줬고, 그 때문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율리아 뒤랑 외에 딱히 기억나는 인물이 없었습니다.

수사 과정의 경우 사건 발생 - 탐문 - 미궁 - 우연한 정보 - 범인 특정이라는 공식이 단선적으로 적용돼서 이야기는 대부분 예상한 대로 흘러갑니다. 특히 주인공의 철저한 추리와 계산, 고된 노력의 대가보다는 예상치 못한 제보나 우연히 취득한 정보에 의해 수사가 진전되는 점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내내 아쉬움이 남았던 대목입니다.

 

이후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 율리아 뒤랑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유들 때문에 높은 평점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말미에 보니 출판사에서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이후 출간 계획을 밝혀놓았습니다. 독일 미스터리만의 독특한 색깔을 좋아해서 새로운 시리즈의 출간 계획은 무척 반갑지만, 이후 작품에서는 ‘550만부의 전설적 판매량의 진가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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