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된 서평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구 800만의 거대 도시 나니와를 배경으로 세 챕터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첫 챕터인 캐멀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중앙정부의 과잉 대처와 첫 환자가 발생한 탓에 인적, 물적 교류를 봉쇄당한 나니와 시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다룹니다. 질병의 위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강경책을 주장하는 후생노동성과 매스컴의 호들갑은 거대한 음모론을 연상시킵니다.

두 번째 챕터인 가마이타치1년 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도쿄지검 특수부 에이스 가마가타 마사시는 나니와 특수부로 자리를 옮긴 뒤 나니와 지사 무라사메 고키, 정체불명의 인물 히코네와 조우하곤 중앙정부의 부당한 정책을 정면공격합니다. 나니와의 공격에 당황한 중앙정부는 비밀회의체인 불상사 뒷수습 회의를 통해 나니와를 철저히 뭉개버리기로 결정합니다.

마지막 챕터인 드래건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니와가 자신들만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벌이는 전면전을 그립니다. 나니와의 정치적 이상의 근간은 이른바 의익(醫翼)주의입니다. 말하자면 국민의 행복을 위한 선결 과제는 완벽한 의료 시스템이며, 그러기 위해 의료는 사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를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이뤄낸다.”는 것입니다. 무라사메 지사는 독단적으로 나니와에 대한 봉쇄를 푸는 것은 물론, 신종 인플루엔자의 발발과 확산에 담긴 중앙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폭로합니다.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을 읽고 별 두 개짜리 서평을 쓰려니 여러 가지로 아쉽고 속상합니다.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에 푹 빠져 메디컬 엔터테인먼트의 진수를 맛봐온 독자 입장에서 나니와 몬스터는 무척 당혹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동안 전작들을 통해 권력과 이익 중심으로 꾸려진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온 것에 반해, 이번 작품에서 가이도 다케루는 다소 과격하고 혁명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성명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챕터 중반부까지만 해도, 신종 인플루엔자를 악용한 중앙정부의 음모에 맞서 특수부 에이스 검사 가마가타가 나니와의 소시민들과 함께 저항하는, 말 그대로 메디컬 엔터테인먼트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암담한 상황에서도 소신껏 진료를 펼치는 기쿠마 의사 父子와 슈퍼 히어로 검사 가마가타의 연대는 다구치-시라토리 콤비를 능가할만한 매력을 품었고, 대학병원을 벗어나 일본 전역을 무대로 삼은 점이나 정계의 거물까지 대거 포진된 캐릭터들은 가이도 다케루의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설정들입니다.

하지만 나니와 지사 무라사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의료입국이라는 허황된 정치적 이상론과 함께 일본 3분할론이라는 비현실적인 주제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대신 첫 챕터의 주인공 기쿠마 의사 父子는 두 번째 챕터부터 사라져버렸고, 두 번째 챕터의 주인공 가타가마 검사 역시 세 번째 챕터에서 꼬리를 내려버립니다. 나니와 지사 무라사메도 뜬금없는 캐릭터지만, 세 번째 챕터의 주인공이자 거물 정치인들을 만으로 좌지우지하는 정체불명의 히코네라는 인물은 황당함 그 자체였습니다.

 

메디컬로 시작해서 허황된 정치 드라마로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이도 다케루의 무리수에 대해 의문점과 동시에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를 통해 제기해온 의료 현장의 문제점은 한국의 현실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니와 몬스터는 한발 더 나아가 의료만이 사법을 통제할 수 있고, 의료만이 제대로 된 입국(立國)의 기반이라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주장을 일관되게 제기합니다. 소설보다 성명서에 가깝다고 느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정제되지 않은 작가의 감정 폭발, , 후생노동성으로 대표되는 중앙 관료체제에 대한 증오심, 의료입국의 당위성과 사법에 대한 불신 등 현직 의료인으로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 주장들을 치기어린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 것이 전부였습니다. ‘의익주의자이자 의료 신격화를 주장하던 정체불명의 히코네라는 인물은 그저 가이도 다케루의 분신에 다름 아니었을 뿐입니다. 그의 팬으로서 많이 실망스럽고, 그만큼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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