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올해(2013)는 말 그대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은 목록에 그의 여러 작품들을 올려놓고도 정작 올해 들어서야 종신검시관얼굴()’로 첫 테이프를 끊었는데, ‘64’클라이머즈 하이로 이어지는 연이은 대작을 통해 그동안 과소평가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미 2005년에 1~2권으로 발간된 적이 있지만 카페나 블로그, 인터넷 서점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64’의 영향 때문에 새삼 새 번역본이 나왔다고 하기엔 왠지 오비이락 같고, 그의 작품들이 최근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것을 보면 올해가 한국에서 요코야마 히데오를 제대로 조명하기 시작한 첫해라는 느낌이 듭니다.

 

군마 현의 지방지 긴타칸토의 기자 유키 가즈마사가 주인공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는데, 1985년 군마 현 산악지대에 추락한 일본항공 사고를 둘러싼 긴타칸토의 긴박한 1주일간의 취재 전쟁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유키 가즈마사가 57세의 나이에 쓰이타테이와라는 험준한 암벽등반에 도전하는 이야기입니다.

520명의 사상자를 낸 세계 최대 항공사고는 긴타칸토라는 지방지를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고도의 긴장상태로 몰아갑니다. 총괄데스크를 맡은 유키는 부서 간 이기주의, 개인 간의 이해의 충돌, 사내의 정치적 대립구조 등 전쟁터에 다름 아닌 편집국 속에서 특종과 언론의 사명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진두지휘합니다. 사고 뉴스를 한 줄이라도 더 싣기 위해 광고를 전격 삭제하기도 하고, 최신 뉴스를 싣기 위해 윤전기를 멈추거나 배급트럭의 키를 훔치기도 하고, 유족들의 분노를 일으킬 독자 투고를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재하기도 하고, 후배 기자의 특종을 위해 상사들과 멱살잡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현재, 유키는 자신의 인생에 큰 궤적을 남긴 친구의 아들과 함께 수백 명의 산악인의 목숨을 앗아간 쓰이타테이와 암벽등반에 나섭니다. 그것은 단순히 등반이란 행위가 아니라 유키 가즈마사 일생의 화두 -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다 를 실천하기 위한 일종의 고행입니다. 더불어, 30년이 넘는 기자로서의 삶을 정리하는 참회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 잘 어울리는 한마디 평“‘64’의 신문사 버전!”입니다. ‘범인 찾기미스터리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있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의 지방신문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서 간의 격렬한 대결과 특종을 위한 기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희대의 연쇄살인마와 그를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더 강력한 페이지터너입니다. 주인공 유키를 비롯하여 너무나도 생생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피아를 떠나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온전히 발휘하여 작품 자체를 뜨거운 용광로로 만듭니다. 그리고, 요코야마 히데오의 가장 큰 매력인 휴머니즘은 마지막 방점처럼 빛납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눈물까지 쏙 빼놓는 진하고 묵직한 감동이 유키를 통해 수시로 전해집니다.

 

유키의 이야기는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킨 영웅담도 아니고, 눈물을 짜내기 위한 억지 휴먼스토리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애정, 잔머리보다는 열정을 앞세우는 순수함,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올곧음 등이 유키가 끌고 가는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더불어, 방대한 서사 중에 유키의 개인사 역시 눈길을 끄는데, 불행한 가족사와 가족관계, 산에 대한 사랑과 조직에서의 미션 사이에서 고민하던 안자이 교이치로와의 우정과 회한, 수년 전 자신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린 후배 기자에 대한 죄책감 등 평범한 개인 유키의 어깨를 짓누르는 주변 요소들 덕분에 단순히 반항적인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작품 전체에서 살아 숨 쉬는 듯 전해집니다.

 

실은 읽으면서 서평에 인용하기 위해 몇 개의 문장을 적어놓았는데, 막상 서평을 쓰다 보니 굳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이더라도 직접 마지막 장까지 달리고 난 후에야 그 맛과 깊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취향의 차이 때문에 웬만해선 남들에게 책을 강추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클라이머즈 하이는 올 여름 must-read 목록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유키 가즈마사의 전쟁 같은 1주일을 통해 ‘64’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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