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폐가에 가까운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빈집털이 3인조는 그곳에서 발견한 40년 전의 주간지를 통해 잡화점 주인 나미야 할아버지가 고민 상담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던 그들은 황당한 일을 겪습니다. 갑자기 우편함으로 툭 들어온 편지를 열어보니 1980년대에 살고 있는사람의 고민 상담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시의 실랑이 끝에 3인조는 답장을 보내기로 합니다.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따뜻하고 재치가 담긴 답장이 아니라 지독하리만치 신랄한 독설을 담아서 말입니다. 문제는, 답장을 보내자마자 그에 대한 답장이 또다시 날아든다는 것입니다.

3인조의 답장을 받은 고민 상담자들의 사연을 그린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돼있습니다. 각 에피소드에는 편지를 보낸 사람들, 답장을 해줬던 나미야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 주변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촘촘하게 얽혀있는 인연과 악연의 끈들이 그려집니다. 마라톤처럼 천천히 하지만 절박하게 달려온 이야기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 마지막 반전과 함께 가슴 따뜻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 진짜 천재네...”

 

최근 연이어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실망을 느꼈던 터라 작년(2012) 연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저 시큰둥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얻어 보고 읽을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초에 접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대한 평은 예상 외였습니다. 스포일러를 접할까봐 상세히 읽진 않았지만 모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평이 대세였습니다. 그런 정보를 접하고도 얼른 찾아 읽진 못한 건 그만큼 최근 그에게 얻은 실망감이 컸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반년이 지나서야 나미야 잡화점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이야기를 읽게 됐습니다. 타임 트립을 소재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던 작품들을 지켜보며 이제 더 이상 타임 트립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란 없겠군, 이라고 자신 있게 떠벌린 적이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런 건방진 독자의 뒤통수를 가차 없이 후려친, 참으로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미스터리가 전공인 작가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작품은 미스터리 못잖게 좋은 결과를 내곤 했습니다. 미래에서 온 아들을 만난 아버지의 성장기 도키오와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의 영혼이 깃든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했던 남편의 이야기 비밀은 어지간한 안구건조증 환자라도 몇 번씩 울컥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대놓고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단순히 고민 상담자들과 나미야 할아버지 간의 편지를 통한 소통을 넘어 고민 상담자들 간의 인연과 악연, 나미야 할아버지부터 증손자까지 4대에 걸친 연대기, 그리고 덜 떨어져 보이는 빈집털이 3인조가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 등 일본문학 특유의 무심함 속의 애틋함이 잘 녹아 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할 뿐 쓰는 데는 전혀 재주가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작품을 써내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보면 글 잘 쓰는 사람이 한없이 부러워질 따름입니다. 최근 몇몇 작품에서 보여준 실망감이 아직 다 상쇄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명불허전의 입증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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